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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역 광장-강우규의거지/남대문 역전 학생단 3·1운동 만세시위지
1919년 9월 2일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신임총독 부임 행렬에 폭탄을 던져 노인 지사 강우규의거가 있었던 곳
1919년 3월 5일 오전 9시 학생단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가 있었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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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밖 교회 함태영 사택 터
3·1운동에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남대문밖교회 함태영의 사택으로, 3·1운동 거사 준비과정에서 제2차 기독교계 지도자 연석회의가 열렸던 곳
3
박승환 순국지/옛 한국 군대해산시 시가전지
1907년 8월 대한제국군 해산에 항거하기 위해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한 곳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반발한 군인들이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인 곳
4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락거점-동화약방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통신 및 문서연락을 담당했던 연통부의 서울 연락거점
5
서대문역 터
1900년 경인선 철도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될 당시 종착역이 잇었던 곳
6
박하균 하숙터-6·10만세운동 사직동계 거점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주축으로 하는 ‘사직동계’학생들이 모여 거사를 준비한 장소
7
안재홍 집터
1927년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결성 당시 안재홍이 살던 곳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서울특별시 |
코스형태 |
도보 |
총 소요시간 |
약 120분 |
| 함께 갈 만한 곳 |
옛 서울역사, 세브란스 빌딩 내 세브란스 병원 관련 전시시설, 숭례문, 4·19혁명기념관, 경교장, 서울역사박물관 |
탐방 목적
일제강점기 서울 성곽 바깥 지역 중 가장 많은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던 西校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독립운동의 성격을 고찰한다.
코스 개요
서울의 서쪽 외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서교(西郊) 지역(현재 서대문구 일대)은 서대문 밖에 위치한 완만한 구릉지대를 뜻한다. 일제강점기 서울은 지세 관계상 남북보다는 동서로 향하여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서교지역은 동대문 밖 동교(東郊) 지역에 비해서도 비교적 빨리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빈민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동교지역에 비해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중국과의 왕래가 빈번하였던 의주로 주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강의 물길을 통해 전국의 물자가 서울로 집결해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은 마포까지 놓여있던 전차를 이용하여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었기에, 비록 1914년 부제(府制) 시행으로 행정구역상 제외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서울 사대문 안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서교지역의 독립운동은 동화약방과 같이 발달된 교통망을 바탕으로 외부, 특히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특징적이다. 또한 신간회운동을 주도하였던 안재홍의 집, 6·10만세운동을 기획하였던 박하균의 하숙집과 같이 서울 사대문과의 긴밀한 지리적 위치를 바탕으로 사대문 안에서 전개되던 독립운동이 기획되는 장소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