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남대문밖교회 함태영 사택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2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도로 확장 과정으로 지하철 1호선 서울역 5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 앞 도로로 편입되었다. |
| 정의 | 3·1운동에서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한 남대문밖교회 함태영 조사(助事)의 사택으로, 3·1운동 거사 준비과정에서 제2차 기독교계 지도자 연석회의가 열렸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기독교 |
| 관련 인물 | 이승훈(李昇薰)/함태영(咸台永) |
| 관련 내용 |
남대문밖교회 함태영(1872~1964) 조사(助事)의 사택이 3·1운동 준비과정에서 기독교계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떠오른 것은 1919년 2월 11일 송진우를 만나 독립운동 거사 제의를 받은 이승훈이 귀향길에 남대문밖교회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평안도 일대를 돌며 동지를 규합하고 2월 17일 재차 상경한 이승훈은 천도교 측과의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2월 20일 밤 협성보통학교 박희도의 숙소에서 감리교회 지도자들과 모임을 갖고 기독교계 단독으로 거사를 추진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튿날 오전 이승훈은 함태영을 찾아와 전날 회의내용을 전하고 장로교계의 동지 규합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이승훈과 최린의 회담이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이에 장로회와 감리회 양 교단 지도자들은 그날 밤 세브란스병원 구내 이갑성의 집에서 연석회의를 열어 천도교 측과의 교섭위원으로 이승훈과 함태영을 선정하였다. 이승훈과 함태영은 2월 23일 천도교 측의 최린과 독립선언 문제를 협의한 뒤, 그날 밤 함태영의 집에서 제2차 장로회·감리회 지도자 연석회의를 열어 천도교 측에서 주장하는 독립선언서 발표 방침을 수용하기로 함으로써 독립운동 일원화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 1972, 12쪽, 17~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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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남대문통 5정목 75 |
|---|---|
| 주소 |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84-1~10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료집』5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함태영은 남대문통 5정목 75번지 남대문밖교회 조사 사택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경성부 지형명세도」(1929)와 현 지번도를 통해 그 위치를 추적해보면, 도로 확장 과정에서 지하철 1호선 서울역 5번 출구 앞 도로로 편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남대문밖교회 함태영 사택 터 - 현 세브란스빌딩 앞 도로
함태영
남대문밖교회 함태영 사택 터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