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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승환 순국지(시위병영터·정미의병 발원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부영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당시 시위대 보병 제1연대 제1대장으로 재직중이던 박승환이 군대해산령이 내려지자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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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박승환(朴昇煥)
관련 내용 시위대(侍衛隊)는 대한제국시기 황성(皇城)을 수비하던 중앙군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개화파 정부는 종래의 여러 군영을 군무아문(軍務衙門)에 소속시켜 일원화했다가, 이듬해 모두 해산하고 일본식 신식군대인 훈련대로 편성하였다. 그러나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세력이 약화되자, 조선정부에서는 군부대신의 감독 하에 왕궁 시위를 담당하는 시위대 2개 대대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이들 시위대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일본 편에 선 훈련대와 충돌한 일로 해산되어 훈련대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 9월 재조직되었다.

시위대는 훈련대의 후신으로 조직된 친위대에서 정병을 선발해 5개 중대로 편성하고, 러시아식 신병훈련을 실시하였다. 1899년 8월 광무정권의 군비강화책의 일환으로 시위기병대가 편제되고, 1902년에는 1개 대대가 증설되어 보병 2개 연대, 기병 1개 중대, 포병 1개 중대와 군악대를 합쳐 총 병력이 5,000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05년 4월 일본의 압력으로 감축된 뒤, 1907년 8월 1일 강제 해산당하였다.

군대해산 당일 통감 관저인 대관정(大觀亭)에 한국군의 각 연대장과 대대장 등을 모아 놓고 군대해산식을 거행하자, 당시 시위대 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으로 재직중이던 박승환(朴昇煥, 1869~1907)은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서소문 병영에 머물러 있다가 군대 해산령을 전해듣고 '군인이 능히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능히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軍不能守國 臣不能盡忠 萬死無惜)'라는 유서를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박승환의 자결을 계기로 서소문 병영에서 총성이 일어나며 일본군과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시위대 군인들의 무장 봉기는 이후 의병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참고 문헌 「최신경성전도」(1907) ;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28쪽.
『고종시대사』 3, 1895년 윤5월 25일조, 국사편찬위원회, 1969, 620쪽.
『고종시대사』 6, 1907년 8월 1일조, 국사편찬위원회, 1972, 656~658쪽.
「과거 한말 병사들의 병영생활 내막기」, 『野談』 제31호, 1938년 5월 ; 「出版物 禁止 要項 - 安寧禁止(出版法에 의한 것)」, 『朝鮮出版警察月報』 제117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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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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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주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120-23, 부영빌딩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최신경성전도」(1907)에 서소문길 남쪽, 현 숭례문 북길에 '시위대 보병 제1연대 제1대대'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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