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박하균 하숙 터 - 6·10만세운동 사직동계 거점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4·19혁명기념도서관 앞 도로로 바뀌어 있다. |
| 정의 |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주축으로 하는 ‘사직동계’ 학생들이 모여 독립운동 거사를 준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6 6·10운동 |
|---|---|
| 관련 조직 | 조선학생과학연구회/조선학생총연합회 |
| 관련 인물 | 이천진(李天鎭)/박두종(朴斗鍾)/박하균(朴河鈞)/이선호(李先鎬)/이병립(李柄立)/이석훈(李錫薰) |
| 관련 내용 |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학생들의 만세시위 준비는 이른바 ‘사직동계’와 ‘통동계’의 두 갈래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이 가운데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주축으로 하는 ‘사직동계’가 거사 준비에 본격 착수한 것은 5월 20일 죽첨정 1정목 36-16번지 박하균(朴河鈞) 하숙집에서의 모임을 통해서였다. 이날 모임에서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이선호(중앙고등보통학교 5년), 이천진(경성제국대학 예과 1년), 박하균(연희전문학교 문과 2년), 박두종(기독교중앙청년회학관 영어과 학생)과 조선학생총연합회의 이병립(연희전문학교 문과 2년) 등은 순종의 인산일인 6월 10일을 기해 대대적인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박하균에게 자금 조달을 맡긴 것을 비롯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그 뒤 이병립과 이선호 등은 6월 7일 박하균의 하숙집에 다시 모여 거사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이병립이 기초한 격문 내용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6월 9일 평동 12번지 이석훈의 숙소에서 격문 6천여 매를 인쇄하였다. 이렇게 인쇄된 격문은 6월 10일 오전 8시 30분경 단성사 앞 파조교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시내 각처에 뿌려졌다. |
| 참고 문헌 |
「이선호 등 11인 판결문」, 1926년 11월 1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4, 1970, 256~263쪽. 김호일, 『한국근대학생운동사』, 선인, 2005, 223~225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죽첨정 1정목 36-16 |
|---|---|
| 주소 | 서울 종로구 평동 166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17 |
| 위치 고증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4권에 6·10만세운동 당시 박하균의 하숙집 주소지와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박하균 하숙 터 - 현 4.19혁명기념도서관 앞
박하균
6.10만세운동 관련 기사(『동아일보』, 1926년 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