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이 있던 곳이다.
2
도로원표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건설하였던 현재의 1번 국도와 2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
3
목포 일본영사관
1900년 12월 건립되어 1906년 1월까지 목포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된 곳이다.
4
유달산
목표를 상징하는 228m 높이의 산으로 목포의 역사와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
5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목포 개항 이후 가장 먼저 목포에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인 동본원사가 사용하던 건물
6
목포청년회관
1920년대 목포지역의 청년운동을 비롯하여 신간회운동·여성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목포청년회관이 있던 곳이다.
7
목포 양동교회 3․1운동 만세시위지
1919년 4월 8일 목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한 장소이자 시위 중심인물들이 교인으로 있었던 곳이다.
8
옛 영흥학교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 학생운동지
1896년부터 2005년까지 전남도청이 있던 곳이다. 전남도청은 5천여 평에 건평 482평의 양식 목조 단층건물로 1900년대 재무감독국 청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을 일제 강점 직후에 전남도청으로 바꿔 사용하였다. 1930년 12월 2층 양옥의 도청을 신축하였는데 이 건물은 2005년 11월 11일 전남도청이 무안군으로 옮겨갈 때까지 사용되었다.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목포시 |
코스형태 |
도보 |
총 소요시간 |
약 70분 |
| 함께 갈 만한 곳 |
이훈동 정원, 오포대, 이난영 노래비, 호남은행 목포지점, 목포향토문화관,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관, 해남공룡박물관 |
탐방 목적
유달산을 중심으로 목포의 침략과 저항의 공간을 아울러 살펴보고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한다.
코스 개요
1897년 10월 개항한 목포는 일본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의 거류를 위해 ‘각국공동거류지’가 설정되었다. 땅이 부족한 탓에 유달산 아래 바다를 매립한 뒤 조성하였고,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망이 정비된 계획도시로 만들어졌다. 처음 이 거류지는 ‘각국’으로 시작했지만 일제의 강점으로 결국 일본인 전관 거류지처럼 되고 말았다.
한편 개항 이후 목포에 모여든 한국인들은 유달산 북쪽 무덤자리에 터를 잡았다. 일제는 이곳에 도시로서의 기본적인 시설조차 하지 않았다.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한여름 더울 때는 분뇨냄새가 나고 겨울에 눈이 오면 진흙 속으로 발이 빠져들었다.
목포의 도시 공간은 유달산을 경계로 한국인과 일본인 거주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는 차별적인 ‘이중 공간’이었다. 유달산 아래 들어선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일제 침략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였는가 하면 산 넘어 한국인 지역에서는 3·1운동을 비롯한 각종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일제강점 하 목포는 식민지 설움 속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절개를 잃지 않았던 항구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