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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목포 양동교회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원형보존 / 1911년 완공한 건물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정의 1919년 4월 8일 목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계획한 장소이자 중심인물들이 교인으로 있었던 양동교회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영흥학교/정명여학교/목포상업학교/목포공립보통학교 
관련 인물 곽우영/서상봉/서화일/박여성/박복영/강석봉/양병진/남궁혁/오도근/김영주/박상렬/권영례/오재복/이금복/배치문/차남석
관련 내용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목포에서는 양동교회 및 기독교계 학교인 영흥학교·정명여학교 등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지역유지이자 양동교회 교인인 곽우영(郭宇英)·서상봉(徐相鳳)·서화일(徐化一)·박여성(朴汝成)·박복영(朴福永)·강석봉(姜錫奉)·양병진(楊炳震) 등이 교회측의 준비를 맡았으며, 남궁혁(南宮赫)·오도근(吳道根)·김영주(金永周)·박상렬(朴相烈)·권영례(權寧禮)·오재복(吳在福)·이금득(李今得) 등 청년들과 연락하며 태극기와 전단을 제작하였다. 또 목포상업학교와 목포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동원하기로 임무를 분담하였으며, 1~2명씩 책임자를 정하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4월 8일 양동교회 교인들과 영흥학교·정명여학교의 교사·학생들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양동교회 교인들은 학생들과 함께‘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쓴 깃발을 들고 앞장섰다. 이 날의 시위로 곽우영·배치문(裴致文)·서화일·박상렬·남궁혁·차남석(車南錫) 등 80여 명이 구속되었다. 이튿날에도 주도자들과 시위대는 구속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한편 만세시위로 양동교회는 이경필 목사·곽우영 장로·서상봉 집사 등을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일경에 검거되는 시련을 겪었다.

양동교회는 미국 남장로회가 1897년 3월 목포부 만복동에 예배처소를 마련함으로써 시작되었으며, 1900년 10월 목포부 양동 126번지에 한옥 17칸 기와집을 신축·이전하였는데 양동교회 또는 목포교회라 불렸다. 1910년에 다시 신축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참고 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3, 1971, 610~612쪽.
김수진,『목포지방 기독교 10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포노회, 1997, 140-147쪽.
김수진, 『양동제일교회 100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양동제일교회, 1997, 187-195쪽.
박이준, 「전남지방 3·1운동의 성격」,『국사관논총』96, 국사편찬위원회, 2001, 127~128쪽.
양동제일교회 홈페이지(http://www.yangdong1st.net).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목포부 양동 126
주소 전남 목포시 양동 127
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호남로 15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3을 비롯한 논저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고, 당시 위치에는 현재 양동교회(기장)가 세워져 있음을 양동제일교회(예장통합)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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