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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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용성 처소 -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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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백용성이 3·1운동 당시 거처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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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독립선언서 인쇄지 -보성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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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월 27일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3월 1일 『조선독립신문』 제1호를 발간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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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불교 중앙교무원 터 -각황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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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창건된 각황사 터로 1927년까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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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불교청년회 회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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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민족운동의 유력한 거점이었던 불교청년회의 회관이 있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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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유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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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만해 한용운이 머무르며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행하던 곳으로, 불교계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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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 -중앙학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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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1월 개교한 불교계의 고등교육기관으로 3·1운동을 비롯한 불교계 민족운동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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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용운 처소 -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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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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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지역 서울 종로 코스형태 도보+대중교통 총 소요시간 약 1시간 30분
함께 갈 만한 곳

탐방 목적

불교계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주도했던 한용운과 백용성 거주지, 일제의 종교 탄압에 저항하며 일어났던 불교 개혁 운동의 중심지 등 불교계 독립운동 사적지를 돌아보며 민족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본다.

코스 개요

한국 불교는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직후부터 ‘사찰령’으로 상징되는 식민지 불교 정책에 구속되었다, 사찰령은 한국 불교계의 자율적인 운영을 저해 억제하는 등 불교계가 스스로 운영하는 틀로 자리잡은 종단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불교계는 사찰령 체제 하에서 일본 불교에게 예속당하는 것을 차단하고자 1911년 초반 한용운, 백용성 등이 중심이 되어 임제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임제종 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후 불교계의 민족운동, 불교 개혁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불교계는 3.1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호국불교, 민족 불교의 정체성을 구현하였다. 한용운과 백용성은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고, 지역의 사찰에서는 지역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불교계의 만세운동은 중앙학림의 학인승려가 각자의 연고지로 가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거나, 서울에서의 3.1운동 소식을 듣고 일으키기도 하였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불교계는 청년 승려들을 중심으로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직하여 불교개혁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불교청년회는 토론회, 순회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면서 불교의 개혁에 앞장섰다. 특히 1922년 3월 조선총독부에 사찰령을 부인하는 건백서를 제출하는 등 사찰령 철폐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불교계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호국불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이 코스에서는 민족대표로 3.1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불교 개혁운동을 주도한 불교계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과 백용성이 거주했던 곳을 돌아본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 터, 3.1운동을 준비했던 유심사와 중앙학림 터를 돌아보며 불교계의 민족정신을 느껴보도록 한다. 또한 1920년대 불교 개혁운동의 중심지였던 조선불교중앙교무원 터와 조선불교청년회 회관 터에서는 청년 승려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워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