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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백용성 처소-대각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완전변형 / 대각사의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백용성이 3·1운동 당시 거처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불교 
관련 인물 한용운(韓龍雲)
관련 내용 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전라북도 장수 출생으로, 속명은 상규(相奎)이다. 16세 때 해인사로 출가해 1884년 통도사에서 선곡율사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뒤, 지리산 금강대와 송광사 삼일암에서 수도했다. 1911년 서울로 올라와 포교를 시작하였고, 뒤에 경성부 봉익동에 대각사(大覺寺)를 건립해 대중교화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한용운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했다가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처승의 법통계승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맹렬히 반대하면서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해 힘썼다. 1940년 2월 대각사에서 77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손병희 등 48인 예심종결결정(고등법원 특별형사부)」, 1920년 3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등법원) 백상규(백용성)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2, 1990, 90~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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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봉익동 1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2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1919년 8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백상규(백용성) 신문조서」와 「손병희 등 48인 예심종결결정」 등에 당시 주소지가 봉익동 1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각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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