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3.1운동 만세시위 준비지-유심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부분변형 /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한옥 한 채가 건물 외벽을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보강한 채 들어서 있다. |
| 정의 | 3·1운동 당시 만해 한용운이 머무르며 불교잡지『유심(惟心)』을 발행하던 곳으로, 불교계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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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최린/한용운/백상규(백용성)/신상완/백성욱/김대왕/오택언/김법린/진규현 |
| 관련 내용 | 한용운(韓龍雲)은 1918년 11월부터 경성부 계동43번지 유심사(惟心社)에서 불교 잡지인 『유심(惟心)』을 발행했다. 1919년 2월 24일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 사이의 독립운동 일원화가 성사되자, 최린은 계동 유심사로 한용운을 찾아가 거사 계획을 설명하고 불교계의 참여를 확약 받았다. 이후 한용운은 합천 해인사 출신 승려로 서울 대각사에 머무르던 백상규(白相奎:白龍城)를 불교계 민족대표로 참여시키는 한편, 2월 28일 밤 중앙학림 학생 신상완(申尙玩)·백성욱(白聖郁)·김대용(金大瑢)·오택언(吳澤彦)·김법린(金法麟: 金法允)·김규현(金圭鉉) 등을 유심사로 불러 각처에 배포할 독립선언서 3천매를 전달하였다. |
| 참고 문헌 |
「이계창 등 30인 예심종결결정(경성지방법원)」, 1919년 8월 30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1971, 104~110쪽. 「(예심조사)오택언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6, 국사편찬위원회, 1993, 115~118쪽. 고재석,「1910년대의 불교근대화운동과 그 문학사적 의의 - 《유심》지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연구』10,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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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계동 43-1 |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4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자료집』5와 「오택언 신문조서」(『독립운동사자료집』16) 등에 관련 사실과 당시 한용운의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유심사 우측면
유심사로 들어가는 골목(좌측 건물이 유심사)
유심사 정면
『유심』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