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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전투지
국군 혼성 제7사단이 한강인도교와 철교를 잇는 노량진 일대에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지연시켰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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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인도교 폭파지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저지시키기 위해 국군 공병대에 의해 폭파된 한강 인도교가 있던 곳
3
전쟁 당시 철도수송본부 터
1950년 6월 25일 교통부 긴급 국장회의를 개최하여 철도수송본부를 설치했던 곳
4
옛 국방부 터
전쟁 발발 당시 국방부가 있던 곳
5
옛 육군본부 터(전쟁기념관)
전쟁 발발 당시 육군본부 및 정보상황실, 정보국, 공병감실 등이 있던 곳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서울특별시 |
코스형태 |
도보 |
총 소요시간 |
약 120분 |
| 함께 갈 만한 곳 |
사육신역사공원,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
탐방 목적
1950년 6월 28일 한강인도교 폭파 작전을 중심으로 6·25전쟁 초기 한강 방어전투 전반을 이해하고, 전쟁기념관을 중심으로 6·25전쟁을 기억한다.
코스 개요
1950년 6월 27일 밤 북한군이 미아리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압하자 육군본부는 한강상에 가설된 한강인도교와 3개의 철교에 대한 폭파준비를 서둘러 완료하였다. 그리고 북한군이 돈암동에 진입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28일 새벽 2시 한강교량의 폭파를 명령하였다. 때문에 서울 일원에 배치되었던 한국군 5개 사단과 각 지원부대의 퇴로가 차단되어 한국군 총병력의 46%가 분산, 상실되었다.
한편 북한군 제1군단은 남침을 개시한 지 나흘 만에 서울을 점령하게 되자, 그들 제2군단이 최초의 작전계획대로 수원으로 우회 기동하여 한강 연변에서 방어선을 형성중인 한국군을 배후에서 협공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국군은 한강선에서 방어하기 위해 시흥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김홍일 소장)를 편성하여 투입하였다. 시흥전투사령부는 놀랍게도 한국군 주력부대들이 흩어진 지 불과 10시간만에 3개 혼성사단을 편성하여 양화동-광진교간의 한강 연변에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한국군은 이 병력으로 7월 3일까지 한강방어선과 용인, 곤지암으로 이어지는 선을 지탱한 뒤 다음날부터 수원남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부터 오산, 안성 지역에 배치되기 시작한 미군과 더불어 새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이때부터 한국군은 미군과 연합작전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