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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육군본부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가수호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후방지원작전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전쟁 당시 한국군 지휘부 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미 8군 기지 용산게이트 쪽에 벙커만 남아 있을 뿐이며 그 자리에 미군 장교 관사가 세워져 있다.
정의 북한군의 남침 당시 작전을 지휘하였던 육군본부 및 정보상황실, 정보국, 공병감실 등이 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국방참모회의, 전군비상령, 한강교폭파
관련 조직 육군본부 
관련 인물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작전참모부장 김백일
관련 내용 한국 육군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창설되어 을지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국방부와 함께 사용하다 옛 조선군사령부 건물로 국방부 같이 옮겨왔다. 육군은 당시 국군의 주력이었기 때문에 국방부와 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에서는 전군에 비상령을 내려 휴가자를 원대 복귀시키는 한편, 전방의 방어부대를 지휘하여 북한군을 저지하고 또한 서울시민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수행케 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이 계속해서 서울로 진격하자 1950년 6월 26일과 27일 연이어 참모회의를 개최하여 서울 및 한강 방어, 육군본부 이전, 한강교 폭파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여 집행하고 전선상황의 급박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본부을 이전하게 되었다.

육군본부는 6월 27일 오후 1시 시흥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이동한 육군본부는 8월 22일 대구로 올라온 이후 1955년 3월 1일 서울에 돌아 왔다. 서울에 돌아오면서 육군본부는 현 전쟁기념관 내에 자리를 마련하고 새 건물을 건립하였다.
참고 문헌 김정렬,『 김정렬 회고록』, 을유문화사, 1993, 140쪽.
이치업, 스티븐 M. 달프,『 번개장군』, 원민, 2001, 21쪽.
공국진,『 한 노병의 애환』, 원민, 2001, 52쪽.
김행복,『 6·25전쟁과 채병덕 장군』,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2,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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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5가
주소 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 2-1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38길 21
위치 고증 백선엽, 이치업 장군 등의 증언과 채병덕 장군의 평전에 의하면, 육군본부는 현 용산우체국 뒤 동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2층 건물로 미군 기지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군사령부 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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