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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만세시위 계획지 - 송정택 집
1919년 3월 8일 통영지역 청년들이 모여 만세시위를 논의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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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만세시위 계획지 - 진명학원 터
1919년 3월 13일 만세시위를 준비하며 진명유치원 교사가 태극기를 만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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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정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1919년 통영지역 주민들이 네 차례에 걸쳐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4
신정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1919년 3월 18일 한문학당 관란재 학생 20여 명이 독립만세를 고창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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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만세시위 계획지 - 산양면사무소 터
1919년 3·1운동 당시 통영에서 사용한 격문 「동포에게 격하노라」를 인쇄한 곳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경남 통영 |
코스형태 |
드라이브 |
총 소요시간 |
약 20분 |
| 함께 갈 만한 곳 |
o 박경리 생가
o 이순신 공원
o 세병관
o 충렬사
o 당포성지
o 제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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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목적
1919년 통영지역에서 전개되었던 3·1만세시위운동의 현장을 찾아가 본다. 이를 통해 3·1만세시위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워본다.
코스 개요
통영은 작지만 활발하게 3·1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된 곳이다. 통영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는 지식인·청년·학생·유치원 보모·기생 등 다양한 계층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만세시위 참여 계층의 확대와 시위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통영의 3·1만세시위운동은 통영 시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이들은 3월 8일 통영면 북신리 송정택의 집에 모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진평헌·양재원·권남선 등 청년 10여 명은 3월 13일 장날에 남망산공원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를 결의하고 준비를 진행해 나갔다. 독립선언서를 구할 수 없어 진평헌이 「동포에게 격하노라」라는 격문을 작성·인쇄하였고, 진명유치원 교사들에게도 연락하여 태극기를 만드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만세시위 정황을 포착한 일제 경찰에 알려지게 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감시도 통영의 만세시위를 막을 수 없었다. 통영의 첫 만세시위는 3월 13일 부도정 장터에서 일어났다. 진명유치원 교사인 양성숙·문복숙·김순이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였다. 부도정 장터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펼쳤다.
이후 통영의 만세시위는 계속 이어졌다. 3월 18일에는 부도정 장터에서 이성철·이봉철 형제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가지고 나와 만세시위를 이끌었고, 22일에는 김상진이 통영 중심가에 격문을 살포하였다. 또 28일에는 수천 명의 장꾼들이 모여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휘두르며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통영의 만세시위는 4월 2일 절정을 이루었다. 부도정 장터에서 고채주·강윤조·박상건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에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생들도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시위의 고양된 열기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1919년 3~4월 통영 일대에서는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만세시위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한민족의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을 과감하게 표출하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코스에서는 통영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운동의 궤적을 따라가 보도록 한다. 통영 만세시위운동이 계획되고 준비된 ‘송정택 집’과 ‘산양면사무소 터’, ‘진명학원 터’를 비롯해서 만세시위운동의 절정을 보여줬던 ‘부도정 장터’, ‘신정 장터’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를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출한 3·1만세시위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