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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부도정장터 3·1운동 만세시위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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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부도정장터는 현재의 중앙시장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상가건물이 새로 들어서 옛 장터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의 1919년 3월 18일과 28일 및 4월 2일 세차례에 걸쳐 통영군 통영면 주민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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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봉철(李奉哲)/박성백(朴星白)/고채주(高采柱)/강윤조(姜潤祚)/박상건(朴相健)
관련 내용 통영 부도정(敷島町) 장터는 상거래가 성한 큰 장으로 매 음력 2일, 7일에 장이 열렸는데, 3·1운동 당시 장날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만세시위가 전개되던 곳이다. 1919년 3월 18일 통영군 통영면 신정의 천주교 신자인 이봉철 외 2명이 부도정장터에서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흔들고 문서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장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3월 28일에는 통영면 조일정(朝日町)에서 반물상(反物商)을 경영하던 박성백 외 7명의 주도 하에 부도정장터에 모인 150여 명의 군중들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2일 통영에서의 만세시위는 절정에 달하였다. 고채주· 강윤조·박상건 등 12명은 4월 2일 장날에 거사를 거행할 것을 결의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였다. 4월 2일 오후 3시 30분경 시장 내 상인들의 철시로 긴장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군중들은 통영경찰서 앞에 몰려갔는데, 경찰서 앞 수천명의 군중들 앞에 선 고채주는 두 손 들어 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을 연설한 후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즉시 출동한 일본 경찰은 총칼을 휘두르며 이를 제지하였고 소방수를 출동시켜 시위대를 향해 물을 퍼부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장터 중앙의 넓은 장소로 옮겨 독립만세를 더욱 소리 높여 외쳤다. 이날의 시위에는 예기조합의 기생 33명이 금비녀와 팔찌를 팔아 소복차림으로 참가하였다. 이날 3,000여 명의 군중들이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 가운데 9명이 체포, 검속되었다.
참고 문헌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6.
「朝鮮五萬分一地形圖; 統營」, 조선총독부, 1926.
「고채주 판결문」, 1919년 4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박상건 판결문」, 1919년 4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정막래 등 2인 판결문」, 1919년 4월 1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강윤조 등 판결문」, 1919년 5월 13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朝鮮憲兵隊司令部,『朝鮮騷擾事件狀況』, 1919, 110∼111쪽
경상남도경찰부,『고등경찰관계적록』, 1936, 17∼18쪽.
김상환, 『일제시기 통영의 3·1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의 전개』, 통영문화원, 2003, 41∼71쪽.

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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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부도정
주소 경남 통영시 중앙동 7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고채주 판결문」·「박상건 판결문」·「강윤조 등 판결문」 및 『고등경찰관계적록』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지적원도」와 1926년에 발행한「朝鮮五萬分一地形圖; 統營」를 근거로 시장의 지번과 위치를 찾을 수 있었고, 향토사학자 김문환씨의 증언으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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