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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원곡면사무소 3·1운동 만세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원곡면사무소로 사용되고 있으나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정의 1919년 4월 1~2일 안성군 원곡면 면민들이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4.1~2 안성군 원곡면사무소 독립만세시위/1919.4.1 안성군 양성경찰관주재소 독립만세시위/1919.4.1 안성군 양성면사무소 독립만세시위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유석(李裕奭)/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
관련 내용 원곡면에서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5~26일경부터 동리 단위로 시작하여 점차 면사무소 앞 시위로 발전하였다. 3월 25~28일 간에는 각 동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킨 주민들이 면사무소 앞으로 모이는 일이 잦았다. 4월 1일이 되자 이유석(李裕奭)·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 등 지도자들은 각 동리마다 시위대를 조직했다. 저녁 8시경 1,000여 명의 시위대가 등불 또는 횃불을 밝혀 들고 면소재지인 외가천리로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후 1,000명이 대열을 지어 면장 남길우와 면서기 정종두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면서 양성면으로 향하였다. 이들은 양성면과의 경계인 성은고개(현 만세고개)에 이르러 이유석·홍창섭·이덕순 등의 연설을 듣고 각기 몽둥이와 작은 돌들을 들고 양성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우편소 등이 있는 양성면 소재지인 동항리로 나아갔다. 이때 양성면 시위대는 만세시위를 하고 저녁 9시 50분경 해산하여 돌아가려던 중 원곡면 주민들과 합류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다시 양성경찰관주재소로 가 만세시위를 한 다음 주재소를 소각하고, 이어서 양성우편소로 가서 집기를 불태우고 양성면사무소에서도 물품을 파괴하고 서류를 불태웠다. 이어 시위대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상과 대금업자의 집을 습격하여 가옥을 파괴하고 가구류와 기물들을 소각시켰다. 양성면에서 관공서와 상점을 파괴·방화한 시위군중들은 이튿날인 4월 2일 새벽 다시 성은고개를 넘어 원곡면으로 와서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를 불태우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참고 문헌 이병헌, 『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 출판국, 1959, 878~87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1, 422~482쪽.
국회도서관,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3, 1979, 146·152쪽.
이정은, 『안성군 원곡·양성의 3·1운동』, 원곡·양성 3·1운동선양회, 1992.
박환, 『경기지역 3·1독립운동사』, 선인, 2007, 93~116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 273
주소 경기 안성시 원곡면 외가천리 273-1
도로명 주소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가천중앙1길 46
위치 고증 『독립운동사자료집』 5권 및 『삼일운동비사』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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