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전개-남대문에서 명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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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환 순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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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8월 대한제국군 해산에 항거하기 위해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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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한국 군대해산시 시가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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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반발한 군인들이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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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교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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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구국운동의 중심지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서울 근거지 가운데 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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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앞 광장 3·1운동 만세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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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오후 독립만세를 부르며 남산 조선총독부 방향으로 향하던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이를 가로막는 일제 군경과 충돌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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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산은행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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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농업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금융기관인 조선식산은행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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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의거지-동양척식주식회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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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경제침략의 상징인 동양척식회사 경성지점이 있던 곳으로, 1926년 12월 28일 의열단원 나석주가 폭탄을 던진 의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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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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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외 독립운동기지 개척을 위해 중국 만주로 망명하기 이전 이회영과 이시영 등 6형제가 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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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거지-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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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2월 22일 청년지사 이재명이 친일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의거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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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지역 서울특별시 코스형태 도보 총 소요시간 약 160분
함께 갈 만한 곳 숭례문, 남대문시장,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명동성당

탐방 목적

남대문 주변 대한제국 시위대 시가전투지와 명동 일대 나석주 의사 의거지를 중심으로 서울지역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전개양상을 살펴본다.

코스 개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는 무장투쟁을 통한 국권회복·독립운동 움직임 또한 활발하게 일어났다. 대한제국의 정치·경제적 중심지 서울은 한말 의병운동에서 의열투쟁에 이르기까지의 무장독립운동에서도 중심지였다.
한말 남대문과 서소문 사이에는 경운궁(덕수궁)을 수비하기 위해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1907년 7월 31일 대한제국 군대해산이 결정되고 다음날인 8월 1일 동대문 훈련원에서 해산식이 강행되자 이에 격분한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이 자결하였다. 이에 장병들은 해산을 거부하고 병영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진격하며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들은 용산에서 출동한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고 이후 1개월여에 걸쳐 대한제국군은 해산되었지만 해산당한 군인 중 일부가 의병에 가담하여 의병투쟁은 국민전쟁으로 발전해 나갔다.
한편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서울은 청계천을 경계로 한국인이 거주하는 이북지역과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는 이남지역으로 확연히 나뉘어졌다. 이때 남부 일본인 구역을 대표하는 거리가 진고개(현, 충무로)였다. 진고개를 배후로 한 을지로·남대문로 일대는 일제 침략과 더불어 동양척식회사 ·조선식산은행·조선은행 등 경제침탈의 전진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제의 침략과 식민통치 기구가 있던 을지로·남대문로 일대는 의열투쟁이 대상이 되었다. 특히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연이어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의 의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