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상동교회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건물은 1974년 구 예배당을 철거하고 신축한 것이다. 7층부터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
| 정의 | 한말 ‘상동파’로 불린 애국지사들의 거점으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서울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민회(新民會) |
| 관련 인물 | 이준(李儁)/김구(金九)/전덕기(全德基)/최남선(崔南善)/이회영(李會榮)/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
| 관련 내용 |
상동교회는 스크랜턴(W. B. Scranton) 목사가 서울 남대문로에 세운 교회다. 스크랜턴은 1885년 미국 북감리회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정동교회 근처에 병원을 세우고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다가, 1889년 남대문 근처 지금의 교회 자리를 사들여 의료선교를 시작하였다. 1893년에는 병원과 교회를 분리해 길 건너편 달성궁(현 한국은행 자리) 안에 있는 한옥에 독립된 예배당을 마련했는데, 이 병원이 제중원에 흡수된 뒤 1902년 현재 자리에 신식 벽돌 예배당을 짓고 다시 이전하였다. 상동교회가 민족운동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전덕기를 비롯한 44명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1897년 9월 교회 안에 엡 윗청년회를 창립하면서였다. 독립협회운동의 일선 행동대로 활약했던 상동청년회는 1905년 을사늑약 반대투쟁을 주도하며 ‘상동파’라 불리는 애국지사들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에 접한 김구, 이준 등 경향 각지의 애국지사들이 전덕기 전도사가 시무하던 상동교회에 모여 조직적인 반대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최남선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상동교회 뒷방에는 전덕기 목사를 비롯해 이회영·이동녕·이준 등 우국지사들이 수시로 모여 국사를 도모했다고 하는데, 안창호가 귀국한 지 2개월 만인 1907년 4월 무렵 신민회를 조직할 수 있었던 것도‘상동파’와 같은 모임이 뒷받침되어서였다. |
| 참고 문헌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2쪽. 상동교회역사편찬위원회, 『민족운동의 선구자 전덕기 목사』, 상동교회, 1979, 16~35쪽. 한규무, 「1900년대 서울지역 기독교회와 민족운동의 동향-정동.상동.연동교회를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19, 1998, 5~2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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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남미창 1 |
|---|---|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에 현 남대문로 변에‘교회(敎會)’라는 글자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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