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상돈 집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던 서상돈이 살던 곳
2
이상정 집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약한 이상정이 살던 곳
3
진골목
1907년 2월 21일 대구 군민대회에서 남자들이 국채보상을 위해 금연을 결의하자 이에 호응하여 패물을 바친 일곱 부인들이 살던 곳
4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대구근대역사관)
농업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인의 투자를 끌어들여 설립한 조선총독부 산하의 산업금융기관인 조선식산은행의 대구지점이 있던 곳
5
조선은행 대구지점 터-장진홍 의거지
조선은행 대구지점이 있던 곳으로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이 폭탄을 보내 폭파를 시도한 곳
6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8년 3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조성된 공원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대구광역시 |
코스형태 |
도보 |
총 소요시간 |
약 36분 |
| 함께 갈 만한 곳 |
달성공원, 경상감영공원,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이상화고택, 동산 선교사 주택, 계산성당, 구 제일교회, 대구 약령시 문화거리 |
탐방 목적
한말, 나라 빚을 갚기 위해 합심하여 일어났던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현장을 중심으로 일제 경제침략과 이에 항거했던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알 수 있다.
코스 개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나갔다. 이에 필요한 자금 또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여 충당하게 하면서, 한국 정부의 부채는 해를 거듭하면서 격증하였다. 이때 일본에서 들여온 국채를 국민의 모금으로 갚자는 거족적인 애국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서상돈 등이 주동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언론기관·사회단체 등의 호응에 힘입어 곧바로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해외에서도 모금이 답지하였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국권회복노력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강점 직후부터 폭압적 수탈정책을 시행하였다. 대구 또한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등 일제 수탈기관이 들어섰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를 비롯한 각종 저항운동을 통해 일제 경제침략에 항거했다.
이 코스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키고 주도했던 서상돈 집, 여성국채보상운동이 처음 시작된 진골목 등 국채보상운동의 현장을 답사하고,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아울러 일제강점기 대구·경북지역 경제수탈의 중심이었던 조선은행 대구지점,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터를 돌아본다. 조선은행 대구지점은 장진홍의 의열투쟁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