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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생가
황현(黃玹, 1855~1910)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으로 전남 광양 출생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그는 시문에 능하였으며, 1888년 생원진사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 향리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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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은거지 터
구례 만수동(현 간전면 수평리)은 황현이 구례 광의면 월곡 마을로 이사하기 전까지 약 16년 동안 생활하며 여러 책을 집필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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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양학교
호양학교는 설립 이후 10여 년 간 신학문을 교육하며 다수의 애국적인 인재들을 양성, 배출하였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그리고 재정난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1020년 3월 공립 광의보통학교의 개교와 동시에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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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순절지
1955년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매천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탐방로 안내
탐방로 정보목록
| 지역 |
전남 광양ㆍ구례 |
코스형태 |
드라이브 |
총 소요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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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갈 만한 곳 |
왕재일 생가, 조경한 생가, 연곡사 고광순 의병부대 전투 및 순국지, 단군전 |
탐방 목적
한말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나라가 망하자 자결 순국한 황현의 일생을 찾아가는 코스이다. 그의 생가에서부터 순절지까지 돌아봄으로써 그의 절개 정신을 느끼도록 한다.
코스 개요
황현(黃玹, 1855~1910)의 본관은 長水, 자는 雲卿, 호는 梅泉으로 전남 광양 출생이다. 그는 黃時默과 풍천노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그는 시문에 능하였으며, 1888년 성균관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며 관직 진출을 단념하고 구례의 만수동에 은거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ㆍ청일전쟁ㆍ갑오개혁이 연이어 일어나자 후세에 귀감을 남겨주기 위하여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을 저술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통분을 금치 못하고 김택영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협의하였으나 일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였다.
1902년부터 1910년 순국할 때까지 거처하였던 광의면 월곡리 인근에 호양학교 설립을 주도하는 등 교육 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호양학교는 황현과 인근의 유지와 함께 1908년 설립하였다. 호양학교는 신학문 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써 등 다수의 애국적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이 코스는 황현이라는 한말 지식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코스이다. 한말 대표적인 유학자인 황현의 삶을 통해서 당시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고뇌와 번민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일제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황현의 민족정신을 배우는 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