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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황현 순절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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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복원 / 집터에는 현재 사당인 매천사가 세워져 있으며, 매천사 경내에 들어서면 왼편에 그가 순절하였던 장소인 사랑채 대월헌(待月軒)이 복원되어 있다. 사랑채는 원래 초가 4칸이었으나 복원시 3칸 와옥(瓦屋)으로 변형되었지만 비교적 잘 복원되어 있다.
정의 한말 우국지사 매천 황현이 1902년부터 살다가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병탄하자 음독순절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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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김택영(金澤榮)/강위(姜瑋)/이건창(李建昌)/정만조(鄭萬朝)
관련 내용 황현(黃玹, 1855~1910)의 본관은 장수,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다. 황희의 후손이며, 황시묵(黃時默)의 아들로 태어났다. 특히 시문에 능하여 1883년 과거에 응시했다가 그 부패상에 실망하여 귀향했으나, 5년 후인 1888년에 부친의 엄명으로 성균관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합격했다. 그는 시국의 혼란함과 관리들의 부패상을 개탄하며 관직진출을 단념하고 만수동에 은거하였는데, 초가 3칸을 짓고 구안실(苟安室)이라 이름하여 학문연구와 후학의 교육에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택영(金澤榮)과 같이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08년 사립 호양학교(壺陽學校)를 설립하여 신학문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일제가 나라를 병탄하자 국치를 통분하여 절명시(絶命詩) 4수와 유서를 남기고 1910년 9월 10일 음독 순국하였다. 황현은 강위(姜瑋)·이건창(李建昌)·김택영·정만조(鄭萬朝)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문장가였다. 특히 황현은 이건창·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 불렸다.

1955년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생전에 살았던 곳에 매천사(梅泉祠)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황현, 『매천집』, 1911.
구례군지편찬위원회, 『구례군지』, 구례군, 2005, 721~7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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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방광면 월곡
주소 전남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672
도로명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월곡길 22-3
위치 고증 『매천집』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향토사학자 문승이씨(86세, 구례군 문척면 월전리 거주)의 증언으로 그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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