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한묵 묘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묘소 |
| 상태 | 원형보존 / 묘소가 잘 보존되어 있다. |
| 정의 |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옥중에서 순국한 양한묵이 묻힌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헌정연구회 |
| 관련 인물 | 손병희(孫秉熙)/권종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최린(崔麟)/임예환(林禮煥)/권병덕(權秉悳)/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김상규(金相奎) |
| 관련 내용 |
양한묵(梁漢默, 1862∼1919)은 전남 해남 출신이며, 천도교인이다. 33세에 탁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임명되었고, 1898년경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00년 초 일본에 망명 중이던 손병희를 만나 동학(東學)에 입교하였다. 1904년에 귀국하여 보안회에 참여하였고, 1905년에는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에 참여했다. 이듬 해 손병희·권동진·오세창이 귀국하여 서울에 천도교중앙총부(天道敎中央總部)를 설치하자 천도교 지도부로 활동하였다. 이후 천도교 집강진리과장(執綱眞理課長)·법도사(法道師)·직무도사(職務道師)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 25일경 손병희·오세창·권동진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계획을 듣고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월 27일 최린·오세창·임예환·권병덕·나인협·홍기조·김완규·나용환·홍병기·박준승 등의 천도교 동지들과 함께 재동 김상규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고, 그 취지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하였다. 그는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泰華館)에서 손병희 등과 함께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 후 출동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19년 5월 26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서울 수유리 공동묘지에서 1922년 5월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2년 5월 5일,「梁漢默氏 返葬, 금일 오후 위령식」. 『동아일보』, 1922년 5월 6일,「梁漢默先生 返葬에 對하야」. 『화순군사』, 화순군사편찬위원회, 1993, 281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1, 1976, 479·556쪽. 홍영기, 「지강 양한묵의 생애와 활동」, 『오세창교수화갑기념 한국근현대사논총』, 1995, 107∼124쪽. 최기영,「한말 천도교와 양한묵」,『역사학보』147, 역사학회, 1995, 97∼100쪽. 『백성이 한울이라』, 화순문화원,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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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서면 앵남리 |
|---|---|
| 주소 | 전남 화순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2년 5월 5일 자 및 5월 6일자 기사와『화순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어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양한묵 묘소 이전 관련기사(『동아일보』, 1922년 5월 6일)
양한묵 초상화
양한묵 묘 전경
양한묵 묘 가는 길
양한묵 묘 후면
양한묵 묘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