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주도경찰서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탄압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이곳은 제주목관아가 복원되면서 제주도경찰서 건물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
| 정의 | 1920~40년대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항일운동을 탄압했던 제주도경찰서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조천만세운동, 제주해녀항일운동, 혁우동맹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제주도에서는 1906년 광주경무고문(光州警務顧問) 소속의 제주분파소가 설치되면서 경찰서 사무가 시작되었다. 1907년에는 목포경찰서 제주분서로 개편되었으며, 1908년 제주경찰서로 승격되었다. 1915년 도사제(島司制) 실시에 따라 도사가 제주도경찰서장을 겸직하였고, 1945년 말에 와서 도사겸직에서 경찰서를 독립시켜 경찰서장을 배치하였다. 일제강점기 제주도경찰서에는 서장인 도사 밑에 경부(警部) 이하 30여명의 경찰관이 있었고, 도내 주요지역 10여 개소에 경찰관주재소를 두었다. 이러한 제주도경찰서는 일제강점기 제주지역에서 발생한 항일인사를 검거하고 탄압했다. 특히 조천만세운동, 제주해녀항일운동, 혁우동맹운동 등 항일운동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이밖에 일본인에 의한 교육에 반발하며 동맹휴학한 제주공립보통학교 학생 10여 명을 구속하거나 무극대도교(無極大道敎) 관련자 60여명을 불경죄·보안법위반 혐의로 체포했으며, 제주도 중면 창천·감산·감산·상창 4리에서 부정호세불납운동(不正戶稅不納同盟) 조직 혐의로 관련자를 체포하여 항일운동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제주도경찰서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하는 모든 활동을 엄금했으며, 이를 어기는 자를 체포, 구속시켜 항일운동 원천봉쇄와 함께 주민통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
| 참고 문헌 |
강창화,「 濟州牧官衙址」, 『古文化』 42·43합집,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2. 제주시, 『제주시의 옛터』, 1996, 353~354쪽. 김봉옥, 『증보 제주통사』, 세림, 2000, 239쪽. 제주도경찰국, 『제주경찰사』, 1990, 74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제주읍 삼도리 43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삼도이동43-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濟州牧官衙址」(1992), 『제주시의 옛터』(1996), 『증보 제주통사』(2000)에 제주도경찰서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














제주도 경찰서 터 정면 전경(2019)
제주도 경찰서 터 정면 원경(2019)
제주도 경찰서 터 좌측 원경(2019)
제주도 경찰서 터 원경(2019)
제주도 경찰서 터 우측 전경(2019)
제주도 경찰서 터 좌측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