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지광사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청진동 221번지로 지번이 통폐합되었는데, 현재 ‘제주도 복집’ 간판이 붙은 건물 뒤편 절반 가량이 그 자리에 해당한다. |
| 정의 | 제4차 조선공산당의 거점 가운데 하나로서 1928년 2월 조선공산당 제3차 당대회 당시 『조선지광』을 출판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8 제4차 조선공산당 조직 |
|---|---|
| 관련 조직 | 조선지광사(朝鮮之光社)/조선공산당 |
| 관련 인물 | 장도빈(張道斌)/김동혁(金東赫)/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임화(林和)/안광천(安光泉)/양명(梁明)/박영희(朴英熙)/이성태(李星泰)/김기진(金基鎭)/이우적(李友狄)/차금봉(車今奉) |
| 관련 내용 |
『조선지광(朝鮮之光)』은 1922년 11월 장도빈을 발행인으로 하여 창간될 당시만해도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잡지였으나, 1924년 5월 발행인이 김동혁으로 바뀐 뒤 김기진·박영희·임화 등 프롤레타리아문학 진영의 문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집필진으로 참여해 프로 문예비평과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 그리고 여성문제 소작문제 등을 다룬 글들을 발표하면서 좌경잡지로 성격이 변했다. 이에 1925년 4월 창립된 고려공산청년회는 한때 자금난에 빠진 『조선지광』을 매수해 경영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제3차 조선공산당(ML당)의 주요 이론가들인 안광천·이우적·양명 등이 『조선지광』 지면을 자주 활용한데 이어, 1928년 2월 27~28일 제3차 조선공산당대회에서 기관지로 지정되었다. 3차 당의 주요 간부 30여 명이 검거된 직후 서울 교외에서 열린 제3차 당대회에서는 차금봉을 책임비서로 하는 제4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조선지광』을 당 기관지로 새로 지정하는 한편 이성태를 그 책임자로 결정하였다. |
| 참고 문헌 |
『조선지광』제72호, 1927년 10월, 「뒷면 서지사항」.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3, 청계연구소, 1986, 295쪽. 장규식,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혜안, 2004, 95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청진동 223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청진동 22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한국공산주의운동사』 3권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광』 제72호 뒷면 서지사항에 발행소 주소지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조선지광』은 1926년 2월 현재 청진동 95-2번지에 발행소를 두었는데, 1927년 10월 청진동 223번지로, 1929년 6월 재동 100번지로 사무소를 이전했다가 1932년 2월 폐간되었다. 청진동 223번지는 『조선지광』이 4차 조선공산당의 기관지로 지정될 당시 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














조선지광사 터 - 제주도 복집 뒷 편
조선지광사에서 발행했던 잡지『조선지광』
조선지광사 터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