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오광선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생가는 멸실되어 없고 그 자리에 표지석과 용인시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있다. |
| 정의 | 한국광복군 등 중국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한 오광선이 태어나 성장한 생가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흥무관학교/서로군정서/대한독립군단/한국독립군/광복군 |
| 관련 인물 | 오인수, 정현숙, 오희영, 오희옥, 신송식 |
| 관련 내용 |
오광선(吳光善, 본명 오성묵, 1896. 5.14~1967. 5. 3)은 용인 원삼면 죽능리 어현(일명 느리재)에서 의병장 오인수(吳寅秀)의 아들로 태어나 여준이 세운 삼악학교를 졸업했다. 1915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체육교관을 지냈다. 서로군정서 제1대대 중대장을 비롯하여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 이후에는 대한독립군단에서 활약했다. 대한독립군단의 중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자유시 참변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탈출하여 독립군 지도부를 풀려나게 하였다. 1930년 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2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하였다. 1936년 김구의 지시로 북경에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1940년 11월 출옥하였다. 1945년 광복 후 귀국하여 광복군 국내지대장을 지냈고, 대한국군준비위원회와 대동청년단에 참여했다. 한국군 육군 대령으로 임관되어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오광선 일가에는 의병활동을 한 오인수,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아내 정현숙(본명 정정산), 광복군에 참여한 두 딸 오희영과 희옥, 사위 신송식 등이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
| 참고 문헌 |
「오광선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인영,『내고장 용인 의병항쟁 및 독립운동사』, 용인문화원, 1989, 273∼276쪽. 용인문화원·용인향토문화연구소,『원삼면지』, 2005. 용인문화원 편, 『한국 독립운동과 용인』, 노스보스, 2019, 234~249쪽. 김명섭, 『한국사가 기억해야 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 2015, 125~135쪽. 김명섭, 「오광선의 생애와 만주 독립군 활동」, 『군사』121, 2021. 김두찬, 「오광선 장군」, 『신동아』, 1971년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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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죽능리 829 |
|---|---|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82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죽능 5리에 있는 ‘義兵將海州吳公寅秀三代獨立抗爭記蹟碑(의병장 해주오공 인수 삼대 독립항쟁기적비)’에는 그의 아버지 오인수에 대해“京畿道 陽智郡 遠三面 竹陵里 於洞(경기도 양지군 원삼면 죽능리 어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광선의 친족으로 죽능 2리 어현마을에 거주 중인 오민근씨는 죽능 2리 827번지 집터가 오인수의 집이었고, 이곳이 오광선의 생가라고 증언하였다. |














오광선 관련 기사(『동아일보』, 1945년 12월 13일)
오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