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원심창 생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해외독립운동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
| 정의 | 무정부주의자이자 흑색공포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던 원심창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유길명공사 암살사건(柳吉明公使暗殺事件)/동경유학생학우회사건(東京留學生學友會事件)/상해육삼정사건(上海六三亭事件) |
|---|---|
| 관련 조직 | 흑우회/흑색공포단/동흥노동조합/흑색전선연맹/불령사/흑풍회/조선자유노동조합/흑우연맹/남화한인청년동맹 |
| 관련 인물 | 박열(朴烈)/백정기(白貞基)/이강훈(李康勳) |
| 관련 내용 |
원심창(元心昌, 1906~1973)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1920년 박열(朴烈) 등이 중심이 되어 흑도회(黑濤會) 내 공산파와 분립하여 세운 흑우회(黑友會)에 가입했다. 1924년 8월 무정부주의 최초의 노동조합인 동흥노동조합(東興勞動組合)에 가입하고, 1926년 11월에는 육홍균(陸洪均)과 흑색전선연맹(黑色戰線聯盟)을 결성하였다. 같은 해 12월 12일 박열의 사업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불령사(不逞社)를 설립해 기관지〈흑우〉를 발행했다. 그러나 극심한 탄압을 받아 1927년 2월 흑풍회(黑風會)로 개칭하는 한편 조선자유노동조합을 조직했으며, 1928년에는 흑풍회를 강화해 흑우연맹(黑友聯盟)을 결성했다. 1929년 4월 동경유학생학우회 폭력사건으로 징역 3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가 한인무정부주의자상해연맹을 조직했으며, 1931년 6월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했다. 1933년 3월경 흑색공포단 동지들과 회합해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有吉明]가 상해사변 후 일제의 침략정책을 검토·확인하는 비밀연회를 가진다는 정보를 탐지하고, 3월 17일 아리요시를 처단할 목적으로 이강훈·백정기 등과 대기하던 중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33년 11월 24일 나가사키[長崎]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출옥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참고 문헌 |
「원심창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원심창 등 3인 판결문」, 1933년 11월 2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 상, 평택시, 2001, 533~535쪽. 김방, 『평택시항일독립운동사』, 평택시독립운동편찬위원회, 2004, 332~384쪽.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1, 평택시사편찬위원회, 2014, 552쪽. 한성대학교 산학협력단, 『평택지역 독립운동가 조사·발굴사업 최종보고서』, 평택시, 2018, 102~103쪽. 김인호, 『원심창이야기』, 평택문화원, 2018, 22쪽. 성주현, 「아나키스트 원심창과 육삼정 의열투쟁」, 『숭실사학』24, 숭실사학회, 2010, 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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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진위군 서면 안정리 175 |
|---|---|
| 주소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로 40번길 24-8 (안정리 17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원심창 등 3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이를 지역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였다. |














원심창 관련 기사(『동아일보』, 1933년 7월 12일)
원심창 판결문
원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