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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강년·이인영 의병부대 전투지 - 대강면 용부원리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변형 / 죽령의 옛길은 완전히 없어지고 고속도로·철도·휴게시설 및 마을 도로의 개보수로 완전 변형되었다.
정의 1907년 10월 말부터 이강년·이인영 의병부대가 죽령 일대를 중심으로 열흘 남짓 일본군과 교전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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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백남규(白南圭)/박갑주(朴甲胄)/임석준(任晳準)/이용업(李龍業)/하한서(河漢瑞)
관련 내용 1907년 10월 22일 제천 싸리재 전투에서 승리한 이강년 의병부대는 10월 24일에 남쪽으로 행군하여 사기막을 거쳐 단양 임현으로 이동하였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죽령 아래 쪽으로부터 일본군수비대가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10월 31일에 장림역으로 이동하여 좌·우선봉으로 하여금 태봉(고속도로 옆, 용부원4리 산 58번지) 동쪽 언덕에 매복시켜 죽령 일대를 차단하였다. 이후 이인영 의병부대와 연합하면서 죽령 일대(산 19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일본군수비대와 접전하였다.

먼저 죽령 아래 매바위(산48번지 일대 마을) 쪽에 일본군수비대 수십 명이 출몰하자, 좌·우선봉에게 아래 위의 통로에 매복하도록 하였다. 의병들은 이틀 후인 11월 2일에 죽령을 넘는 수비대를 공격하여 6명을 사살하였다. 5일에는 수비대의 기습이 있었고, 6일에도 교전하여 8명을 사살하였다. 7일에는 일본군수비대가 매바위로 와서 민가에 불을 질렀다. 10일에도 고리평에서 전투가 있었다.

11월 11일에는 일본군수비대가 남면과 장림으로 나누어 쳐들어 온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에 이강년 의병부대는 풍기의 병참이 비었을 것으로 계산하고 모든 병력을 인솔하여 죽령에 올라 공격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일본군이 남북쪽에서 들이닥쳐 매바위의 좁은 목을 가로막고 사격을 가해 왔다. 의병들은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소백산 정상 쪽으로 흩어졌다. 이강년이 남아서 병력을 호령하고, 좌우선봉의 견제 사격으로 일본군의 추적을 뿌리치고 산마루에 오를 수가 있었으나, 병력의 손실이 컸다. 별진에 속해 있던 청풍 선비 임석준(林晳準)도 병으로 뒤쳐졌다가 포로가 되었다. 죽령에서의 패전은 이강년 의병부대에게 매우 큰 타격이었다. 이후 이강년은 간신히 부대를 수습하여 소백산 등성을 넘어 영춘 쪽으로 갔다.
참고 문헌 「이용업 판결문」,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1909년 9월 11일.
『대한매일신보』, 1907년 11월 20일, 3면 4단,「지방정형」.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544-54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1-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244-246쪽.
구완회,『한말의 제천의병』, 집문당, 1997, 303-305쪽.
이종립,『단양독립운동사자료집』, 단양문화원, 2004, 41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충청북도 단양군 동면 용부원 죽령·매바위·태봉·장림
주소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3구 태봉 산58·응암 산48·죽령 산1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운강선생창의일록」(『독립운동사자료집』1)과「이용업 판결문」·『대한매일신보』1907년 11월 20일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단양군향토사연구위원인 지성룡이 죽령·태봉·매바위의 위치를 증언하여 현장을 비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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