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호남창의회맹소 결성지 - 석수암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석수암은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고, 수연산은 현재 군 부대 안에 있기에 접근하기 어렵다. |
| 정의 | 1907년 10월 30일 기삼연이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7-8 후기의병 |
|---|---|
| 관련 조직 |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
| 관련 인물 | 김익중(金翼中)/김태원(金泰元)/이철형(李哲衡)/김용구(金容球)/이영화(李英華)/기삼연(奇參衍)/이남규(李南奎) |
| 관련 내용 |
기삼연(奇參衍, 1851~1908)은 1896년 장성의병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 후에도 계속 의병을 도모할 일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영광 출신의 김용구(金容球)와 뜻을 같이 하게 되어 1907년 10월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호남창의회맹소의 지도부는 대부분 장성·고창·영광 등 전라도 서부지역의 양반 유생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노사 기정진(蘆沙奇正鎭)의 문인이나 기우만(奇宇萬)과 기삼연의 제자들, 김용구가 주도하여 1906년경 조직한 일심계원(一心契員)이 많았다. 따라서 일심계는 호남창의회맹소의 모체나 다음 없는 선행조직체라 할 수 있다. 호남창의회맹소의 결성장소인 수연산(隨緣山)의 본래 명칭은 영취산(靈鷲山)이었으나 이 산에 소재한 수연사(隨緣寺)라는 절로 인하여 수연산이라 불려졌다. 수연산은 현재 장성군 삼계면 덕산리와 동화면 서양리, 황룡면 관동리 등 3면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으며, 영광군과 접해 있다. 호남창의회맹소와 연관된 의병장들이 호남지방의 후기의병을 주도하였고, 회맹소 결성을 계기로 호남지방의 후기의병이 크게 활성화되고 장기 항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따라서 호남창의회맹소가 결성된 장소로서 석수암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
| 참고 문헌 |
『폭도편책』9, 全秘發제114호, 1907년 11월 6일(정부기록보존소 소장, 88-4, 1907), 264-26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632쪽. 홍영기, 「한말 호남창의회맹소에 대한 일고찰」, 『한국근현대사연구』21,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홍영기,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 일조각, 2004, 230-2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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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서이면 관동리 수연산 |
|---|---|
| 주소 | 전남 장성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폭도편책』9에서, 1907년 10월 30일(음 9.24) 장성 수연산 석수암에서 호남창의회맹소가 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석수암은『장성군사』에 의하면 1908년 소실되었다가 1926년에 중건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불탔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관동리 마을 주민들도 석수암이 한국전쟁 때까지 존재한 것으로 증언하였다. 현재 장성군 황룡면 관동리에 위치한 수연산에 석수암 터가 있음을 마을 주민들의 증언으로 확인하였다. |














석수암 터 원경
호남창의동맹비
석수암 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