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산청년회관 터 - 신간회 양산지회 창립대회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멸실되고 다른 용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양산청년동맹·신간회 양산지회·근우회 양산지회 등 사회단체들의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양산청년회/양산부인회/양산청년동맹/신간회 양산지회/근우회 양산지회 |
| 관련 인물 | 엄주화(嚴柱和)/전병건(全秉健)/김철수(金喆壽)/최학선(崔學鮮) |
| 관련 내용 | 1920년 7월 15일 양산공립보통학교에서 200여 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양산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양산청년회는 '사회 혁신과 문화 공헌을 위한 건강 증진, 지식 확대 그리고 단결을 통한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참석자의 의연금으로 회관을 건립하였다. 이후 양산청년회 회관은 각종 친선대회, 시국 및 계몽 강연회, 학술토론회 등의 개최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노동야학회 등도 개설되는 등 명실공히 양산지역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다. 1922년 8월에는 양산부인회의 창립대회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27년 12월 기존의 양산청년회를 혁신하고 새롭게 양산청년동맹이 조직되자 기존 회관 건물은 양산청년동맹의 회관으로 사용되었다. 1928년 3월에는 양산청년동맹 간부들과 지역유지들에 의해 신간회 양산지회가 창립될 때 창립대회장으로 이용되었으며, 1929년 6월 근우회 양산지회가 조직될 때는 창립대회장으로도 이용되었다. 이후 1931년 4월 신간회 양산지회의 해소까지 양산지역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중심지로 사용되었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양산군 읍내면 중부동 지적원도」, 1912. 『동아일보』, 1920년 7월 22일, 「양산청년회 창립총회 개최」. 『동아일보』, 1922년 9월 22일, 「양산부인회 창립」. 『동아일보』, 1927년 12월 5일, 「양산청년동맹 지난 27일에 창립대회」. 『동아일보』, 1928년 3월 25일, 「양산지회 설립」. 『동아일보』, 1929년 6월 26일, 「근우양산지회 21일에 설립」. 김승, 「일제하 양산지역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지역과 역사』 14, 부경역사연구소, 2004. 양산향토사연구회,『 (증보판) 양산항일독립운동사』, 양산시민신문, 2009, 138-1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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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양산군 읍내면 중부동 153 |
|---|---|
| 주소 | 경남 양산시 중부동 15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8년 3월 25일자, 1929년 6월 26일자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양산향토사연구회의 증언을 토대로 토지대장을 열람한 후 「경상남도 양산군 읍내면 중부동 지적원도」와 현 지적도를 상호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신간회 양산지회 설립 관련기사(『동아일보』, 1928년 3월 25일)
좌측에서 본 양산청년회관 터
양산청년회관 터 정면
우측에서 본 양산청년회관 터
양산청년회관 터 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