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주금융조합 터 - 박춘성 의거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4년 7월 진주금융조합 급사 박춘성이 독립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공금 6천원을 탈취하는 의거를 벌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4 진주금융조합 예금탈취사건 |
|---|---|
| 관련 조직 | 고려공산청년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박춘성(朴春星, 1906~1945)은 진주 출신으로 진주금융조합의 급사였다. 1924년 6월 경 장두관(張斗爟)을 통하여 독립군자금을 조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김영호(金永浩)와 상의한 결과, 재직 중인 금융조합의 돈을 탈취하기로 작정하였다. 7월 31일 박춘성은 식산은행에 예금을 하려던 6천원을 탈취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를 가지고 만주로 건너가려고 하였으나, 서울에서 경찰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 결과 박춘성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려공산청년회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고문후유증으로 39세에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진주금융조합은 1918년 10월 20일 설립허가를 받아, 1918년 12월 10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1919년 2월 10일 중안동 진양금융조합 사무소의 방 하나를 빌려 업무를 개시하였다. 1920년 4월 대안동에 사무소 신축을 위해 부지를 매입하여, 1922년 7월 신축을 완료하였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시대일보』, 1924년 10월 2일, 「진주 6천원사건, 판결 언도 29일에」. 勝田伊助, 『진주대관』, 진주대관사, 1940, 126~128쪽. 추경화, 『진주항일운동사』, 진주문화원, 2008, 225~22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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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대안동 356 |
|---|---|
| 주소 | 경남 진주시 대안동 7-10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박춘성의 의거 사실은 『시대일보』 1924년 10월 2일자 기사에 보도되어 있다. 『진주대관』에 진주금융조합의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토지대장」을 통해 확인하였다. |














일제시기의 진주금융조합
박춘성 의거 관련기사(『시대일보』, 1924년 10월 2일)
진주금융조합 터 - 박춘성 의거지 정면
진주금융조합 터 전경
진주금융조합 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