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집의계 구국맹약지 - 조설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기타 |
| 상태 | 변형 / 위치는 그대로이나 변형이 이루어졌다. 출입구 우측에는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내부 좌측에는 ‘오라동 망배단’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중앙에는 ‘조설대’비와 ‘대한광복의사’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주변이 감귤 밭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다. |
| 정의 | 1905년 을사늑약에 대항하여 12인의 제주 유림들이 집의계를 결성하여 구국맹약을 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을사늑약, 경술국치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응호(李膺鎬), 서병수(徐丙壽), 김병구(金炳龜), 고석구(高錫九), 김석익(金錫翼), 김기수(金基洙), 강철호(姜哲鎬), 김이중(金履仲), 강석종(姜錫宗), 임성숙(林成淑) |
| 관련 내용 |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같은 해 12월 제주 유림 이응호(李膺鎬), 서병수(徐丙壽), 김병구(金炳龜), 고석구(高錫九), 김석익(金錫翼), 김기수(金基洙), 강철호(姜哲鎬), 김이중(金履仲), 강석종(姜錫宗), 임성숙(林成淑) 등 12인이 문연서숙(文淵書塾)에 모여 집의계(集義契)란 비밀결사를 결성했다. 이들은 오라동 연미마을 바위산인 망곡단(望哭壇)에 모여 집의계 선언문을 낭독하고, ‘경술국치를 씻기 위해 왜적에게 항거하기를 천지(天地)와 더불어 하고 종묘사직에 맹세하여 의병으로 투쟁하자’고 다짐했다. 본래 망곡단은 국상을 당했을 때, 선비들이 모여 향을 피우고 북향사배(北向四拜)하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후 이곳은 집의계 회원들에 의해 ‘조선의 치욕을 설욕한다’ 뜻의 ‘조설대(朝雪臺)’로 불리었다. 조설대는 을사늑약과 경술국치의 치욕을 씻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제주 유림들의 항일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1912년 5월 일왕 메이지[明治]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제주 유림들과 주민들이 모여 통한을 달랬으며, 1919년 3월 25일에는 12명의 지사들과 부근 일대에서 모여 든 10여 명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
| 참고 문헌 |
제주시,『제주시 옛터』, 1996, 309∼311쪽. 김찬흡,『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문화원, 2005, 452∼454쪽. 제주시,『제주시30년사』, 1985, 225쪽. 오라동향토지발간위원회,『오라동향토지』, 2003, 379∼384쪽. 제주문화원,『역주 증보 탐라지』, 2005, 6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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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제주군 중면 오라리 3135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오라이동 313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제주시 옛터』(1996)와『제주항일인사실기』(2005)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조설대 구국맹약지 내에 세워진 조설대비(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내부 전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원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내부 전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내부 전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원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입구 전경(2019)
조설대 구국맹약지 내부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