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현재 도로에 완전히 편입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송종현 집이 있던 곳 앞쪽에는 ‘광제교’가 있고, 뒤편에는 ‘감액천 샘터’비가 세워져 있다. |
| 정의 | 제주지역 청년단체 결속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신인회가 활동을 전개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인회(新人會), 제주청년연합회 |
| 관련 인물 | 송종현(宋鍾絃), 김택수(金澤銖), 한상호(韓相鎬), 홍순일(洪淳日), 강창보(姜昌輔) |
| 관련 내용 |
신인회(新人會)는 1925년 3월 11일 송종현(宋鍾絃)의 집에서 결성되었다. 김택수(金澤銖)·한상호(韓相鎬)·홍순일(洪淳日)이 총무부 간사를 맡았고, 송종현·강창보(姜昌輔) 등이 교양부 간사에 선출되었다. 이들은 무산자를 본위로 한 신사회 건설을 신인회 선언 강령으로 채택하고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청년운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신인회 강령이 불온하다 하여 조직 초기부터 일제의 탄압 대상이 되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신인회가 조직된 지 2개월 만인 1925년 4월 17일 김택수와 송종현은 출판법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같은 해 5월 9일 금고 6월형을 언도받았다. 신인회는 제주지역 청년단체를 결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민족의식 교육에 힘써 이후 후세대 인물을 키워내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신인회는 제주청년연합회를 결성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 |
| 참고 문헌 |
「송종현 수형인명부」, 제주지청, 1925년 5월 9일. 「전순협 등 46인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30년 12월 22일. 『동아일보』, 1925년 3월 19일, 「新人會의 組織, 十一日 濟州서」. 『동아일보』, 1925년 5월 12일, 「濟州新人事件, 검사대리로부터 육개월 구형」. 『동아일보』, 1925년 5월 13일, 「 新人事件 言渡, 금고 육개월식」. 염인호, 「일제하 제주지방의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전환과 제주야체이카 사건」, 『한국사연구』 70, 한국사연구회, 1990. 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490~491쪽.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371~37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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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제주면 일도리 1301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일도 130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5년 3월 19일자, 5월 13일자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동아일보』 1925년 3월 19일자에 '일도리 송종현의 집에 모여 사상단체 신인회를 조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전순협 등 46인 판결문」에 송종현의 주소지가 '제주도 제주면 일도리 1301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














신인회 관련기사『( 동아일보』, 1925. 3. 19)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정면 전경(2019)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우측 전경(2019)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우측 전경(2019)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좌측 전경(2019)
신인회 활동지-송종현 집터 좌측 전경(2019)
신인회 관련기사『( 동아일보』, 1925. 5. 12)
신인회 관련기사『( 동아일보』, 1925.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