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가옥은 없어지고, 에메랄드 호텔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9년 5월 일본의 통치권을 무력화시켜 독립을 성취한다는 목적하에 조직된 비밀결사체인 우리계가 활동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형설회, 흑도회, 우리계 |
| 관련 인물 | 고병희(高秉禧), 조대수(趙大秀), 고영희(高永禧), 강기찬(康箕贊), 김형수(金炯洙) |
| 관련 내용 |
1927년 3~4월경에 고병희·조대수·고영희·강기찬·김형수 5인이 모여 무정부주의 연구 기관인 문고를 설치하였다. 이들은 1929년 5월 5일 우의돈목(友誼敦睦), 경조상문(慶弔相問), 생활향상(生活向上) 등의 목적으로 매월 삼원의 조합비를 3년간 거두기로 하고 우리계(宇利契)를 조직하였다. 고병희는 1922년 일본 유학시절 비밀결사인 형설회와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의 사회구조를 파괴하고 지배적 권력이 없는 사회, 또 개인의 절대적 자유가 있는 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자였다. 1923년에 관동 대지진으로 귀향한 뒤 잡화상을 하면서 뜻 맞는 인사들을 규합하였다. 1929년 5월 5일 ‘우리계’라는 조합을 조직하였고,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체로 발전시켜 일본의 통치권을 무력화하여 한국의 독립을 성취하려 했다. 모임은 대부분 김형수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매달 1회 회합하여 공동연구를 발표하면서 동지를 규합, 조직을 확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조직이 드러나면서 계원 모두 검거되어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고병희·조대수는 징역 3년, 고영희·강기찬·김형수는 각각 징역 2년 6개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고병희 등 6인 판결문」, 1930년 12월 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고병희 등 5인 판결문」, 1931년 7월 14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30년 12월 3일,「제주도에서 검거된 무정부지사 공판, 광주지방법원에서 개정한 후 개정 오분만에 방청금지」. 『동아일보』, 1930년 12월 3일,「표면기관으로 우리계 조직」. 『동아일보』, 1930년 12월 10일,「濟州島事件, 最高五年言渡, 무죄된 일명을 제외하고는 피고전부공소할 듯」. 염인호,「일제하 제주지방의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전환과 제주야체이카 사건」, 『한국사연구』70, 한국사연구회, 1990. 제주도지편찬위원회,『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38~542쪽. 김찬흡,『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308~3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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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제주면 삼도리 935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중앙로 12길 35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고병희 판결문」(광주지방법원, 1930년 12월 8일·대구복심법원, 1931년 7월 14일)에 김형수의 집에서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관련기사『( 동아일보』, 1930. 12. 10)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
우리계 활동지-김형수 집터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