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문준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사회주의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멸실 / 현재 2층 가정집이 들어서 있으며,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
| 정의 | 1920~30년대 일본 오사카에서 노동운동과 민족언론 활동을 전개한 김문준이 태어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대판조선노동조합,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대판조선노동조합 북부지부, 대판조선소년동맹, 신간회 대판지회,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 동아통항조합,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산업노동조합 대판지부, 일본공산당 |
| 관련 인물 | 안세훈(安世勳), 김유환(金瑬煥), 김시용(金時容), 고순흠(高順欽) |
| 관련 내용 |
김문준(金文準, 1894~1936)은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에서 김중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신학교(義信學校)를 졸업하고, 1912년에 제주공립농림학교, 1915년에 수원고등농림학교 본과를 졸업했다. 고향에 돌아와 학교 설립과 교육활동에 전념하다가 일제 경찰로부터 민족교육자로 지목받으며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자 1927년 7월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10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대판(大阪)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 및 동 노동조합의 북부지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임되면서 일본에서의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29년 7월 제주도 출신 소년들을 중심으로 대판조선소년동맹을 조직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신간회 대판지회 검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일본 선박업자들의 횡포에 맞서 '우리는 우리의 배로'라는 구호 아래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 결성을 주도하였으며, 1930년 4월에는 동아통항조합을 결성했다. 1930년 5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산업노동조합 대판지부의 책임자가 되어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대판고무공장 노조 파업을 배후조정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1931년 12월 24일 오사카[大阪]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32년 4월 12일 오사카공소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사카이(堺)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그는 일본공산당의 확대 강화를 지도하였으며, 1935년 5월 한글신문이었던 『민중시보』를 발행하여 조선인들의 생존권 투쟁과 권익 옹호를 위해 활동했다. 1936년 5월 22일 수감생활 중에 걸린 폐결핵이 악화되어 사망하였으며, 1937년 3월 25일 조천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2005년 대전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김문준묘비'는 오사카 전기노조에서 대리석 석주를 기증하고 고순흠(高順欽)이 글을 써서 제주도로 유해를 옮길 때 함께 옮겨와 세운 것이다. |
| 참고 문헌 |
「김문준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문준 판결문」, 대판공소원, 1932년 4월 12일. 「수형인명부」, 대판공소원, 1932년 4월 12일. 「김문준 판결문」, 1932년 4월 12일 ; 「조선인의 일본공산당 확대강화의 행위(김문준 판결문)」, 『사상월보』 제2권 제2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2년 5월, 36~40쪽. 『조선일보』, 1929년 9월 1일, 「신간 대판지회 확대간사회, 갑산화전민사건 등 결의」. 『동아일보』, 1936년 5월 24일, 「김문준 별세」. 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1025~1039쪽. 강만길·성대경,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창작과비평사, 1998, 70쪽.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4, 2000, 121~122쪽. 김찬흡, 『20세기 제주인명사전』, 제주문화원, 2000, 116~118쪽.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211~21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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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 3210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천3길 5-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문준 판결문」와 '김문준 묘비'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수형인명부」에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김문준 묘비'는 일본에서 김문준이 사망한 후 지인들에 의해 제작되어 고향에 세워진 것이다. |














김문준 집터 정면 전경(2019)
김문준 집터 근경(2019)
김문준 관련기사『( 동아일보』, 1936. 5. 24)
김문준 집터 전경(2019)
김문준 집터 원경(2019)
김문준 집터 우측 전경(2019)
김문준 집터 좌측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