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순흠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주의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멸실 / 현재 ‘조천 삼성빌리지’ 건물이 들어서 있고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 정의 | 대동청년당과 조선노동공제회 등에서 활동한 무정부주의 활동가 고순흠이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대동청년당, 조선노동문제연구회, 조선통신중학관, 조선인여공보호연맹, 제주항해조합, 기업동맹 기선부, 송매죽 |
| 관련 인물 | 김명식(金明植), 홍두표(洪斗杓) |
| 관련 내용 |
죽암(竹岩) 고순흠(高順欽, 1893~1977)은 1893년 성균관 교수(敎授)를 역임한 고성겸의 아들로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능하여 9세 때부터 한문으로 글을 지을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났다. 1912년에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고순흠은 김명식(金明植)과 홍두표(洪斗杓)와 함께 송매죽(松梅竹)를 결성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의했다.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하면서 대동청년당(신민회 계열의 비밀단체)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항일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1919년 7월 조선노동문제연구회를 설립했고, 이어 1920년에는 조선노동공제회 발기인으로 참가하여 서무 책임자로, 1921년에는 간사로 선출되었다. 그해 9월 조선통신중학관을 개설하여 학감에 취임하고 통신중학강의록을 발행하여 독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1924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절대 자유를 이념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오사카[大阪]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착취받고 있는 조선인 여성을 위해 조선인여공보호연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말경 제주항해조합과 기업동맹 기선부를 설립하여 제주 - 오사카 간에 독립 항로를 개설하여 순길환을 취항시켰으나 경영난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잠시 정치활동을 하다가 접고 서예활동에 몰두하다 1977년 11월 28일 사망하였다. |
| 참고 문헌 |
「고순흠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매일신보』, 1921년 8월 18일, 「濟州島興學講學」. 『동아일보』, 1921년 8월 21일, 「濟州興學會講演會」.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14, 1978, 11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 3, 1978, 41~53·79쪽. 문국주, 『조선사회운동사사전』, 사회평론사, 1981.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154~156쪽. 염인호,「일제하 제주도에서 전개된 아나키즘 운동」,『한국근현대지역운동사』2, 역사문제연구소, 1993, 285~28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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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 2654 |
|---|---|
| 주소 |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10-1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제주항일인사실기(2005)에 고순흠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














고순흠 관련기사『( 동아일보』, 1921. 8. 21)
고순흠 집터 전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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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흠 집터 전경(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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