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삼악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삼악학원 터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당시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 지역에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가 조성될 예정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 터는 본래 낮은 구릉이었으나 그곳에 밭을 만들면서 깎아내렸기에 삼악학원이 있던 당시의 지형과도 다르다고 한다. |
| 정의 | 여준이 자신의 고향에서 인재 양성을 위해 고향에 설립한 삼악학교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삼악학교/서전의숙/신민회/오산학교/상동청년학원/한국광복군/구국모험단/흥사단 |
| 관련 인물 | 여준(呂準)/오광선(吳光鮮)/오항선(吳恒善)/오태선(吳台善)/오용근(吳龍根)/이승훈(李承薰)/장지영(張志暎)/김공집(金公緝) |
| 관련 내용 | 삼악학교는 신교육 기관이 필요하다고 여긴 죽릉리 태생의 여준(呂準,1862~1932)이 오태선, 오용근 등과 함께 1908년에 원삼면 죽능리에 설립한 사립학교이다. 여준은 북간도 용정에서 서전서숙(瑞甸書塾)의 교육활동에 참여했으나 폐교되자 귀국해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상동청년학원에 파견되었는데, 이 무렵 가족과 형님이 살고있는 죽릉리에서 외가 친척인 오태선(吳台善), 오용근(吳龍根) 등과 협의해 학교 설립을 구상하였다. 오항선(吳恒善)이 자기 집을 기부하면서 삼악학교를 건립하였다. 이후 현재 위치에 초가로 건물을 짓고 교육하였다. 학생 수는 알 수 없으나 교육비를 받아 운영하였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에 따른 조선교육령에 간섭을 받지 않으려면 국가의 지원이 없이 학교를 운영해야 했으니 수업료를 받아야 했다. 교사는 여준, 오태선, 김도태, 김공집 등이 있었다. 졸업생으로 만주독립군 오광선이 있으며, 오산학교 출신으로 모스크바 비행학교 유학생이었던 김공집이 1911년부터 1914년까지 교사로 재직했다. |
| 참고 문헌 |
<竹山의 三岳崢嶸>, 《대한매일신보》, 1908. 9. 19. <令人起敬>, 《대한매일신보》, 1910. 5. 18. 김태근, 「용인의 근대학교 설립과 국채보상운동」, 『한국독립운동사 속의 용인』, 용인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2009, 52~57쪽. 김태근, 「여준(1862~1932)의 민족운동 연구」, 아주대대학원, 2005. 윤선자, 「김공집의 독립운동」, 한중인문학연구, 2016. 김명섭, 『한국사가 기억해야 할 용인의 근대역사인물』, 노스보스, 2015, 95~105쪽. 용인문화원 편, 『한국 독립운동과 용인』, 노스보스, 2018, 78~79쪽. 용인문화원, 『죽능리 독성리 마을지』,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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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능촌리 |
|---|---|
|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390-1 일대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