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상산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2008년 조사 때 건물은 없어지고 일반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2021년 조사에서도 큰 변화상을 발견할 수 없다. |
| 정의 | 1905년 10월 진천군에 설립된 상산학교가 처음 교사로 사용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진천향교 |
| 관련 인물 | 이상직(李相稷)/이탁응(李擇應)/남진우(南鎭祐) |
| 관련 내용 |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어 외교권이 일본에게 박탈되자 이상직(1878~1947)은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구미 선진 국가의 교육 방법을 도입하여 문명인을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그해 10월 28일 고향인 진천으로 내려와 사립 보통상산(常山)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는 자택 객실을 개조해 교실을 만들고 교육 시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학생을 모집하고 교사를 초빙하여 신학문 교육을 실시하였다. 상산학교는 진천에 세워진 근대 학교의 효시로서 개교 당시 생도는 4명이었고, 이상직 교장과 남진우 선생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교육 내용은 한문·국어·산수·지리·역사·법학·체조·가창 등이었다. 학생 수 증가로 교실이 협소하자 진천향교의 명륜당을 이용하기도 하였다.『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등 당시 신문을 보면 상산학교는 ‘문명(文明)학교’라는 교명으로도 불렸다. 1909년 당시 진천군수 이탁응으로부터 향교 재산 연수입인 조 40여 석과 옛날 현아 터를 학교 부지로 제공 받아 교사를 신축하였다. 1910년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배일사상을 교육한다는 이유로 사립학교를 폐쇄시키고 전국 각처에 공립학교를 세웠다. 1911년 9월 사립 보통상산학교도 폐교됐고, 10월 2일 진천공립보통학교가 그 자리에 개교하었다. 진천공립보통학교는 1913년 지금의 삼수초등학교 (진천읍 333-1) 자리로 이전하였다. 1940년 다시 현재의 상산초등학교(읍내리 357-1) 자리로 이전하고 1941년 교명을 상산국민학교로 바꿨다. |
| 참고 문헌 |
「잡보」,『황성신문』, 1906년 4월 17일. 「진천문교」,『황성신문』, 1906년 6월 1일. 「광고」,『대한매일신보』, 1906년 6월 3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8, 1976, 275쪽. 진천군지편찬위원회, 『진천군지』, 진천군, 1994, 1003쪽. 상산고적회,『국역 상산지』, 2002, 53쪽. 이상진, 『진천교육의 뿌리 상산교육 100년』, 진천상산초등학교총동문회 개교100주년 기념사업회, 2005, 76·82쪽. 진천상산초등학교(www.jcsangsan.es.kr). 디지털진천문화대전(http://jincheon.grandculture.net/jin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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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북변면 상리 |
|---|---|
|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381(중앙북4길 5-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진천 교육의 뿌리 상산교육 100년』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후신인 상산초등학교의 전 교장 김부웅(진천읍 읍내리, 2008년 조사당시 62세)이 처음 상산학교가 개교한 위치를 현재의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 381번지(현재 브니엘 환경)로 고증하여 현장을 확정하였다. |














상산초등학교 건립 100주년 기념비
상산학교 터 원경(이상직 집터)
현재의 상산초등학교
상산학교 터 전경(이상직 집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