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석문공립보통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당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며 석문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30년 1월 석문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전개하려는 격문사건이 발생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9 광주학생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인운식/임종만/고일/인학수 |
| 관련 내용 | 석문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5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930년 1월 18일 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직전 발견되어 석문공립보통학교 교사 인운식(印雲植), 신간회 당진지회 임종만(林鍾萬)·고일(高一)·인학수(印鶴洙) 등이 체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
| 참고 문헌 |
『조선일보』, 1930년 9월 3일, 「石門普校事件, 全部간 免訴, 네명은 예심중」. 『조선일보』, 1931년 6월 27일, 「唐津檄文事件 各6個月 求刑, 25일 공주법원에서, 판결은 30일에 언도」. 『동아일보』, 1930년 1월 25일, 「당진석문공보, 만세계획 발각」. 『동아일보』, 1931년 7월 2일, 「石門公普事件全部無罪判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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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통정리 |
|---|---|
| 주소 |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596-1 |
| 도로명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다리들길 7 |
| 위치 고증 | 『조선일보』 1930년 9월 3일자와 『동아일보』 1931년 7월 2일자 보도에 의하면 석문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세운동을 전개하려다 발각되었다. 석문공립보통학교는 현재 석문초등학교이다. |














석문공립보통학교 격문사건 관련기사(『동아일보』, 1931년 7월 2일)
석문공립보통학교 터 - 현 석문초등학교 교문
석문초등학교 개교 80주년 기념비
석문공립보통학교 터 - 현 석문초등학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