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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연두막동산 제주해녀 항쟁시위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민족주의독립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현재 제주해녀항쟁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해녀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또한 1998년 8월 15일 건립한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탐 우측에는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3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정의 1932년 1월 12일 제주도 구좌면과 정의면 지역 해녀들이 제주도해녀조합의 수탈에 대항하며 일으킨 2차 제주해녀항쟁 참가자들이 집결해 시위를 벌였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32 제주해녀시위사건
관련 조직 구좌면해녀조합, 제주도해녀조합 
관련 인물 부춘화(夫春花), 김옥련(金玉連), 부덕량(夫德良)
관련 내용 1932년 1월 7일 부춘화(당시 25세)·김옥련(당시 23세)·부덕량(당시 22세) 등이 주도하여 벌인 1차 시위가 세화 오일장에서 이루어진 이후 해녀대표들의 요구사항을 접수한 구좌면 해녀조합 지부장(구좌면장 겸임)이 1월 12일 구좌면을 방문하는 제주도사((濟州島司, 제주도해녀조합장)에게 알려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함에 따라 1월 12일 다시 구좌면 종달리·하도리·세화리 해녀들과 정의면 오조리 해녀 등 700여 명이 연두막 동산에 집결해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두막 동산에 집결한 해녀들은 호미와 빗창을 휘두르고 만세를 부르며 세화 오일장으로 행진했으며, 세화 오일장에 도착한 해녀들은 제주도해녀조합에 대한 불평과 함께 죽음으로써 항쟁하자는 다짐을 했다.
구좌면과 정의면 각 리별로 20여 명의 해녀대표를 선출, 요구조건을 결정할 즈음 정찰하는 해녀로부터 구좌면사무소를 방문했던 도사가 막 돌아가려고 한다는 정보가 있자 시위대는 즉시 이곳으로 몰려가 차를 타려고 하는 도사를 포위했다. 해녀대표와 도사의 면담 결과, 도사는 해녀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정판매 폐지, 경쟁입찰에 의한 공동판매 부활, 미성년자와 40세 이상 해녀조합비 면제 등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었다. 이날 연두막동산에 집결하여 이루어진 해녀시위는 가장 규모가 컸고 제주도사와의 담판을 통해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 일부나마 관철시킬 수 있었다.
참고 문헌 『조선일보』, 1932년 1월 24일,「제주해녀 시위 상보, 오일 내의 완전 해결, 언명듣고 유유해산」.
후지나가 타게시,「1932년 제주도해녀투쟁」,『4·3장정』, 제주4·3연구소, 1990.
제주도지편찬위원회,『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81∼590쪽.
하도향토지발간위원회,『하도향토지』, 2006, 272∼320쪽.
제주특별자치도해녀박물관,『제주해녀사료집』, 2009, 103∼121쪽.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257~258·358~359쪽.
북제주군, 『북제주군지』上, 2000, 592~596쪽.
김은실, 「제주해녀의 주체성과 제주해녀항일운동」, 『국가와 정치』16, 성신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2010, 27~69쪽.
박찬식, 「제주해녀투쟁의 역사적 기억」, 『탐라문화』30,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07, 39~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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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 상도리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해녀박물관길 2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조선일보』1932년 1월 24일자에 ‘세화경찰관주재소 동쪽 2정쯤 되는 네거리에 종달, 오조 해녀 대략 300명과 하도 해녀 대략 300명, 세화해녀 40명이 일시에 동남북으로 모여’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세화경찰관주재소 동쪽 2정쯤 되는 네거리가 현재 연두막 동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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