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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최낙철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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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지상의 건축물은 완전히 멸실되어 집터는 밭으로 변해버렸다.
정의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연구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최낙철이 살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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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연구회/대구사범학교/다혁당/윤독회 
관련 인물 최낙철(崔洛哲)/임굉/이태길/장세파/김영복/이무영
관련 내용 최낙철(1921~2005)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인 1940년 11월 동교생 35명과 함께 문예활동을 표방한 비밀결사 문예부를 조직하였다. 다음해 1월에는 독립을 위한 실력배양과 항일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동교생 임굉(林宏)·이태길(李泰吉)·장세파(張世播)·김영복(金榮宓) 등과 함께 이무영(李茂榮)의 집에 모여 항일학생결사인‘연구회(硏究會)’를 조직하였다. 연구회는 조국독립을 위한 실력배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한 단체로, 회원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분석하여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조국의 독립에 대비하여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 후 각기 전문 분야의 권위자가 될 것을 결의하였다.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회원들의 졸업을 앞두고 연구회는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웠다. 항일투쟁을 실천하기 위한 단체로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여 여러 차례 비밀회합을 가진 회원들은 졸업 후 교사로 각 학교에 배치되면 우수한 아동들에게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그 활동상황을 공문으로 위장하여 월 1회씩 보고하기로 약속하였다.

1941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최낙철은 함경북도 나진의 약초공립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을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결사인 윤독회(輪讀會)의 간행물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면서 비밀결사의 조직이 드러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취조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2년 동안 미결수로 있던 최낙철은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 문헌 「신정효준(新井孝濬, 박효준) 등 35인 예심종결결정」, 1943년 2월 8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 독립문화사, 1971, 28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799~82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 1977, 763~780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모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554~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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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351
주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오산마을 351-4
도로명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오무실로 127
위치 고증 대구사범학교사건 관련 「신정효준(新井孝濬, 박효준) 등 35인 예심종결결정」에 최낙철의 주소지가 무풍면 은산리 351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최낙철의 조카 최학림(은산리 이장)의 증언을 통해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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