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고창노동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고창군에서 친환경농산물판매장 및 부대시설을 짓고 있다. |
| 정의 | 고창지역 노동운동의 중심지로 야학 및 계몽운동을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고창청년회/고창노동친목회/고창노동회 |
| 관련 인물 | 김승옥 오동균 |
| 관련 내용 |
고창의 노동운동은 김승옥(金升玉)과 오동균(吳東均) 등이 이끌었다. 이들은 모두 고창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김승옥은 3·1운동 당시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언도받았고, 이후『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지국장 그리고 고창기자단 간사로 활동하면서 고창청년회 간부와 고창노동친목회 회원(고창노동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오동균 역시 고창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징역 10개월의 형을 언도받았으며, 이후『동아일보』고창분국장 겸 기자와 고창노동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두 사람 모두 1920년대 고창지역 노동운동을 이끌던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고창지역 노동운동을 이끌며 고창노동회관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의 계몽을 위해 각종 토론회와 야학 등을 개설·운영하였다. 1926년 9월 1일부터 10세 이상 30세 이하의 시민 50명을 모집하여 2년을 기한으로 노동야학을 시작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3년 8월 6일,「高敞勞動會館 新築」. 『동아일보』, 1926년 9월 3일,「高敞勞夜開始」. 「김승옥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오동균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깅승옥 등 3인 판결문」, 1919년 5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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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 교촌리 |
|---|---|
| 주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18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6년 9월 3일자 기사와『1920년대 전북지역 농민운동』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화(87, 전 고창문화원장)의 고증으로 위치를 비정하였다. 대한통운이 있던 곳에 노동회관이 있었다고 한다. |














고창노동회 야학 관련기사(『동아일보』, 1926년 9월 3일)
고창노동회관 터 측면
공사 중인 고창노동회관 터
고창노동회관 터 전경
고창읍성 방향 쪽 고창노동회관 터
위에서 바라본 고창노동회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