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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해청년회사무소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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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원래 가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한빛세탁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정의 주병화가 중심이 되어 활동한 진해청년회의 사무소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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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진해청년회/진해청년단/진해구락부/진해소작회/신간회/신간회 창원지회 
관련 인물 주병화(朱炳和)
관련 내용 진해청년회 사무소는 주병화(朱柄和, 1890~1931)가 1913년 창원군 진해면 경화리에서 대서업을 개업한 장소로, 1915년 진해에서 처음으로 청년회가 결성된 곳이다. 진해청년회는 1915년 진해청년단으로 창립되어 1919년 진해구락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가, 1923년 5월에 진해청년회로 변경하는 동시에 내용까지 혁신하여 종래 부르조아적 색채를 버리고 완전한 무산운동단체로 활동하게 되었다. 1927년 당시 회원은 98명이고, 위원은 주병화 외 8명으로 진해·명동·덕산·이동·석동·경화동 등지에서 노동야학을 조직하여 청년회원으로 무료 교수하였다. 1926년부터는 간이도서부를 설치 하는 등의 일을 전개하였다. 또한 1920년에 창간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지국도 이곳에 있었다.

진해에서 활발히 사회운동에 힘쓴 주병화는 1890년 10월 6일생으로 1913년 당시 마산부 웅읍면 원포리에서 진해면 경화리로 이주하여 1915년 진해청년단을 조직하였다. 1916년에는 사립대정학교의 운영을 지원하는 진해장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생도보호회장이 되어 일제의 민족차별 교육정책 하에서 후진 양성을 위해 야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1920년 3·1운동 이후 창간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지국도 맡았으며 1923년에는 동지를 규합해 진해소작회를 창립하고 일본인과 소작쟁의를 이끌었다.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자 신간회 창원지회를 결성하여 지회장을 맡았다. 1931년 마산에서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에 급성맹장염으로 당시 시설이 좋았던 해군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 소홀로 1931년 1월 11일 사망했다.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폐쇄지적도」.
『동아일보』, 1923년 5월 7일, 「진해구락부 총회」.
『동아일보』, 1926년 12월 10일, 「출옥동지 위안」.
『동아일보』, 1927년 3월 3일, 「 간역도서부 일반 종람 개시, 진해청년회에서」.
『동아일보』, 1927년 11월 16일, 「순회탐방(484) : 지천에 양전옥답 산물이 풍부(5), 해률교통 지극 편리, 창원 - 사회단체, 진해청년회」.
진해시사편찬위원회, 『진해시사』, 2006, 309쪽.
황정덕, 『진해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 금창출판사, 2004, 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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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 경화리
주소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 454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경화로22번길 9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7년 11월 16일자 등에 진해청년회와 관련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주병화 가족의 증언(딸 주옥자)을 채록한 황정덕의 증언에 의거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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