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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노응범 집터- 경남결사대 체포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약 15년 전에 철거되어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정의 1920년 황태익이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조직한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경남결사대가 체포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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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천도교/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경남청년회 
관련 인물 황태익(黃泰益)/강재순(姜在淳)/임태준(林台俊)/강대규(姜大規)/노성화(盧聖和)/황호익(黃浩益)/노응범(盧應範)/김의진(金義鎭)/손병희(孫秉熙)
관련 내용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전세계에 풍미하는 가운데, 1919년 3월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는 황태익(黃泰益)에게 세계 개조의 기회가 도래했으니 정치운동에 가담하여 국권 회복에 일조할 것을 권고하였다. 독립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황태익은 1920년 3월 9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옥봉리에서 천도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경남결사대(慶南決死隊)를 조직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원조하여 독립운동을 단행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경남결사대는 황태익을 대장으로 진주·고성·창원·사천·함안·영산·의령·합천 등지를 순회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후 결사대원의 명단을 작성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보고하는 등 임시정부와는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였고, 배일역사서(排日歷史書)를 간행하여 각 방면의 동지들을 규합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1920년 4월 상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이 남선지방을 순시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진주로 가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당일 경계가 엄중하여 결행하지 못하였다. 6월에는 부산의 축항식(築港式) 축하회에 정무총감 등 여러 대관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암살 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거행하지 못했다.

5월 중순 부하를 부산으로 보내어 상황을 살펴보도록 한 황태익은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산 속의 노응범 집에서 천도교 경남청년회장 김의진·임태준 등 천도교도와 함께 다음 거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논의 중 밀고를 받고 출동한 진주경찰서원의 습격을 받아 현장에 있던 결사대원 전원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결사대원은 황태익·강재순·임태준·김의진·노성화·황호익·노응범·강대규 등 8명이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지적원도」, 1916.
『동아일보』, 1920년 6월 5일, 「총독암살단 체포, 황태익 이하 7명의 결사대, 천도교청년회장도 들었다」.
『매일신보』, 1920년 6월 5일, 「소위 경남결사대는 기실 산적의 일군, 남의 돈을 막빼앗고 다녀, 진주경찰세에서 체포해, 수괴 황태익 외 7명」.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 1976, 379~380쪽.
향토사료연구회, 『訥菴黃泰益先生實記』, 신한출판사, 1980, 101~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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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주소 경남 고성군 구만면 화림리 9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0년 6월 5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기사에는 '화림리 산중에서 체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후대의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으로 결사대원 노응범 집에서 체포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노응범 집의 정확한 지번은 「제적등본」으로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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