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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최우순 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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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가옥
상태 원형보존 / 내부는 일부 수리되었지만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의 1911년 일제의 은사금 받기를 거부하고 음독 자결한 최우순이 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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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내용 최우순(崔宇淳, 1832~1911)은 고성군 하일면 학동마을에서 태어났다. 개항 이후 계몽교육에 헌신하였고, 가문으로 인하여 흉년이 계속되자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국모 시해에 대한 복수와 단발령에 대한 결사 반대를 외치며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최우순은 서부경남 일대의 유림 지사를 규합하여 자희산록(紫喜山麓)에서 창검술을 익히며 훈련을 하였고, 다른 지방 의병들과 합류하기 위해 고성읍성으로 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게 침탈당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불출하면서 우국의 정을 달랬는데, 자택 동쪽에 원수의 나라가 있다고 하여 동쪽으로 난 사립문을 서쪽으로 돌리고 아호를 서비(西扉)로 고치기도 하였다. 1911년 3월 최우순에게 하사하는 은사금을 일본인이 가지고 왔으니 받아가라는 연락이 면사무소로부터 왔는데, 최우순은 이는 은사(恩賜)가 아니라 수사(讐賜)라 하면서 불의(不義)한 돈 받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면사무소에서는 헌병을 보내어 그를 잡아와 은사금을 주려 하였다. 이때 최우순은 헌병에게 지금은 밤이 깊어 갈 수 없으니 내일 날이 밝으면 갈 것이라 했는데, 최우순은 그날 밤 홀로 음독 자결하였다. 향년 80세였다.

선생의 애국하는 마음을 흠모한 주민들은 1924년에 서비정(西扉亭)을 건립했는데, 현재의 것은 1975년에 전면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6.
송상도,『 騎驢隨筆』, 국사편찬위원회, 1955, 204-206쪽.
김영택 외,『 조선시대사 한사경』, 태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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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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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977
주소 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977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학림6길 72-14
위치 고증 송상도의『騎驢隨筆』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랫동안 고성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에 거주해 온 최재생씨와 현 거주자인 최을석씨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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