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통영공립보통학교 터 동맹휴학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세병관 바로 옆에 위치했던 학교 교사(校舍)는 멸실되었고, 현재 세병관을 중심으로 통제영지 관아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
| 정의 | 1920년 4월 20일부터 27일까지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교장의 과잉 체벌에 맞서 동맹휴학을 전개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0 동맹휴학 |
|---|---|
| 관련 조직 | 통영협성회/통영청년단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1920년 4월 20일 통영공립보통학교 제3·4학년 학생들은 교장과의 불편한 감정으로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4월 17일 아침 두 명의 학생이 새 잡는 고무활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교장이 그것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려고 학생들을 불렀는데, 학생들은 두려운 생각에 달아났다. 이에 교장이 학생들을 쫓아가 운동장에서 빰을 때리는 등 몹시 구타하였고,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사무실로 끌고가 구둣발로 차는 등 심하게 구타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3·4학년 학생들이 교장에게 교수받을 수 없다며 도지사에게 교장의 전임을 청원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교장이 주동 학생 4~5명을 퇴학시켰다. 이에 3·4학년 학생 일동이 20일 동맹 휴학하기로 결의하였다. 약 1주일간 동맹휴학을 하였던 통영공립보통학교 3·4학년 학생들은 통영협성회와 통영청년단 임원·학무위원 등의 중재로 28일부터 등교하였다. 1908년 세병관 옆 관아 터에서 진남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통영보통학교는 1915년 통영공립보통학교로 개명하였고 1946년 통영국민학교로 개명하였다. 1996년에는 통영초등학교로 개명했는데, 세병관을 중심으로 통제영지 관아 복원공사가 추진되면서 2005년 교사(校舍)는 무전동으로 이전하였다. |
| 참고 문헌 |
「토지대장」. 「朝鮮五萬分一地形圖; 統營」, 조선총독부, 1926. 『동아일보』, 1920년 4월 27일, 「公普學生 同盟休學」. 『동아일보』, 1920년 5월 2일, 「統營學生의 同盟退學, 교장이 학생을 때리어, 삼사년 일동 동맹퇴학」. 『동아일보』, 1920년 5월 14일, 「公普學生 復校」. 공정희, 「통영시의 매립지 확장과정과 주요 매립지의 토지이용에 대한 고찰」, 경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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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조일정 57 |
|---|---|
| 주소 | 경남 통영시 문화동 5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0년 4월 27일자 및 5월 2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학교의 위치와 지번은 1926년 발행한「조선오만분일지형도; 통영」과 1932년에 발행된「통영읍전도」 및 「토지대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통영공립보통학교와 세병관(1950년대 말)
통영공립보통학교(1910년대)
통영공립보통학교 터에서 바라본 세병관
통영공립보통학교 터
통영공립보통학교 터
통영공립보통학교 터 원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