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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봉래좌 터 - 신간회 통영지회 창립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1928년 3월 25일 신간회 통영지회 창립대회가 개최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신간회(新幹會) 
관련 인물 김철호(金哲鎬)/김재학(金載學)/이찬근(李瓚根)/방정표(方正杓)/임철규(林徹圭)
관련 내용 1928년 3월 25일 봉래좌에서는 신간회 통영지회의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다. 1927년 신간회의 출범과 함께 통영지역 사회운동 단체에서도 신간회 통영지회를 설립하고자 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지회 설립대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간섭으로 무산되었는데,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1928년 3월 25일 오전 10시 봉래좌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지회설립준비위원회에서는 대회 당일 선전삐라를 배포하면서 대대적인 참가를 독려하였다. 오후 3시경 봉래좌에는 80여 명의 회원과 100여 명의 방청객이 모였다. 김철호의 개회사와 김재학의 경과보고를 비롯하여 회원심사를 마친 후 임시집행부를 선임했는데, 임시의장에는 이찬근, 서기에는 방정표, 이찬근 두 사람이 피선되었다. 강령 및 규약제정이 있은 후 각지에서 온 축사와 축문을 낭독하고 임원선출에 들어갔다. 임원선출은 회장과 부회장은 투표로, 이하 간사는 전형위원으로 선정할 것을 결의했는데, 회장에는 이찬근이, 부회장에는 임철규가 당선되었다. 이어 내빈축사로 본부에서 특파한 이철용이 신간회에 대한 취지설명과 현재 조선사회의 경제방면에 대한 열강이 있었다. 신간회 통영지회는 1931년까지 활동을 지속하다 해소되었다.

1914년 9월 통영에 거주한 일본인 40여 명이 5,000원을 모아 일본인을 위한 종합오락장으로 문을 연 봉래좌는 3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건물이다. 봉래좌는 당시 건립된 다른 극장들처럼 일본 전통 가부키 공연장과 비슷한 형식으로 설계되었는데, 여기서는 가부키 공연 뿐만 아니라 1920~1930년대에는 브나로드 운동을 위한 강연회장이나 악극단들의 순회공연장으로 쓰였다. 1939년에 재래식 영화관으로 신축한 후 1946년 봉래극장으로 개명했다가 2005년 9월 철거되었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지적원도」, 1916.
『중외일보』, 1928년 2월 6일, 「신간회통영지회 준비」.
『동아일보』, 1928년 3월 31일, 「신간 통영대회」.
『동아일보』, 1939년 3월 9일, 「통영봉래좌 신축, 팔월 초순경 완성」.
中村資良, 『조선은행회사요록』, 동아경제시보사, 1921. 230쪽.
김상환, 『일제시기 통영의 3·1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의 전개』, 통영문화원, 2003, 73~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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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 159
주소 경남 통영시 문화동 15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8년 3월 31일자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중외일보』 1928년 2월 6일자 기사를 통해 봉래좌가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에 위치했음을 확인하였다. 「토지대장」을 통해 통영극장주식회사 소유의 건물임을 확인하였다. 주민들의 증언으로 몇 년 전까지 있었던 봉래극장이 옛 봉래좌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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