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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화 집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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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민족주의독립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변형 / 부춘화 집은 하도리 마을 내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지붕과 문 등이 개량되었다.
정의 1932년 1월 제주해녀항쟁 당시 해녀대표로 구좌지역 해녀들의 권익 향상과 생존권 투쟁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부춘화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32 구좌면해녀항쟁
관련 조직 제주도해녀조합 
관련 인물 부춘화(夫春花), 부대현, 김순종, 오문규, 김옥련(金玉蓮), 부덕량(夫德良)
관련 내용 부춘화(夫春花, 1908∼1995)는 1908년 구좌면 하도리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15세 때부터 해녀생활을 시작했으며 1927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리야학소에서 세화리 출신 부대현과 하도 출신 김순종·오문규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931년 5월에는 생복과 감탯재 판매에 있어 지정상인 지정가격 감하, 지정등급 변경 등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하도리 해녀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의 제주해녀에 대한 착취에 항거하는 해녀항쟁을 일으켜 일제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항거했다. 이들은 1932년 1월 7일과 12일에도 해녀항일운동을 선도했으며, 특히 1월 12일 다구찌[田口] 제주도사 겸 제주도해녀조합장이 세화경찰관주재소를 순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김옥련·부덕량과 함께 하도리·종달리·세화리·연평리(우도)·시흥리·오조리 등지의 해녀 1000여 명을 동원하여 다구찌 제주도사를 포위하고 해녀들의 요구사항을 낭독하는 한편, 해녀의 권익옹호와 자주성 회복을 외치면서 항일시위를 전개해 제주해녀항일투쟁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일제는 더이상 해녀항일투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포응원경찰대를 동원, 1932년 1월 26일 사건 연루자 20여 명을 검거하자 해녀대표인 부춘화는 해녀를 다시 동원, 검속 경관대와 무장 경관대에 격렬히 항쟁했다.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소요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6월을 언도받았다.
참고 문헌 「부춘화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조선일보』, 1932년 1월 24일, 「제주해녀시위상보」.
『매일신보』, 1932년 3월 5일, 「검거자백여명중」.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358∼359쪽.
후지나가 타게시, 「1932년 제주도해녀투쟁」, 『4·3장정』, 제주4·3연구소, 1990, 81∼117쪽.
제주해녀항일투쟁기념사업회,『제주해녀항일투쟁실록』, 1995.
제주도지편찬위원회,『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81∼590쪽.
하도향토지발간위원회,『하도향토지』, 2006, 272∼320쪽.
제주특별자치도해녀박물관,『제주해녀사료집』, 2009, 103∼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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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 하도리 1411
주소 제주 제주시 구좌읍 문주란로 2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제주 구좌읍사무소를 방문하여 부춘화의 토지대장을 확인하고, 위치를 확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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