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민족주의독립운동 |
| 종류 | 집터 |
| 상태 | 멸실 / 현재 문도배 집이 있던 곳은 빈 공터로 변해있다. |
| 정의 | 해녀들의 항일의식 고취와 야학운동을 지원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혁우동맹을 주도한 문도배가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32 제주해녀항일운동 |
|---|---|
| 관련 조직 | 제주혁우동맹(濟州革友同盟) |
| 관련 인물 | 신재홍(申才弘), 강관순(康寬順), 문도배(文道培), 오문규(吳文奎), 김순종(金順鍾) |
| 관련 내용 | 제주도의 혁우동맹(革友東盟)은 1930년 3월 1일 결성된 항일비밀결사단체로, 신재홍·강관순·문도배(1908∼1953)·오문규·김순종 등이 조직하였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해녀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야학을 통해 해녀들을 학습시키는 등 조직적인 항일운동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 제주해녀항일투쟁의 배후역할을 수행하였다. 혁우동맹은 1930년 3월 1일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 1222번지 문도배 집에서 결성되었다. 1930년 9월 20일에는 이곳에서 해녀 본위의 조합설립을 협의하기도 했다. 이러한 혁우동맹은 1931년 1월 하순에 목적수행상의 효과가 적고 또 발각 두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체가 논의되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공산당재건운동이 전개되면서 혁우동맹은 결국 결성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해산되었다. |
| 참고 문헌 |
「문도배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한정 등 24인 판결문」, 1933년 6월 5일, 대구복심법원. 『동아일보』, 1932년 12월 11일, 「濟州島秘社事件 四十名 全部起訴」. 『동아일보』, 1932년 12월 14일, 「濟州島事件 豫審終決書(2)」. 『조선중앙일보』, 1933년 5월 26일, 「濟州革友同盟 廿三名의 公判」. 『조선중앙일보』, 1933년 5월 29일, 「濟州革友同盟 廿九日에 求刑」. 『조선중앙일보』, 1933년 6월 6일, 「제주혁우동맹, 최고 5년역 언도」. 『매일신보』, 1933년 6월 1일, 「濟州革友同盟 最高七年役求刑」. 『매일신보』, 1933년 6월 7일, 「제주혁우동맹사건」. 김찬흡,『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323-324쪽. 제주도지편찬위원회,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 1996, 591~62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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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 1222 |
|---|---|
|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222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김한정 등 24인 판결문」, 『동아일보』1932년 12월 11일자,『제주항일인사실기』 등에 문도배의 집 번지와 활동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전경(2019)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전경(2019)
제주혁우동맹 관련기사『( 조선중앙일보』, 1933. 6. 6)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전경(2019)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입구 전경(2019)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전경(2019)
제주혁우동맹 결성지-문도배 집터 전경(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