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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영원 집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3·1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김영원이 거주하던 생가와 근처 삼요정은 모두 멸실되었다.
정의 천도교 지도자로 임실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영원의 집과 그가 세운 삼요정이 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 3·1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관련 내용 김영원(金榮遠, 1851∼1919)은 15살이 채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주경야독하는 향학열로 제자백가에 능통하여 약관의 나이에 뛰어난 학문으로 인근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25세 때는 칠보에 있는 무성서원 장의로 선출되었다. 이후 집 부근에 삼요정(三樂亭)을 세워 후학양성에 전념하였다. 그의 문하생 가운데 박준승과 양한묵 두 사람이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2일 운암면 지천리에 있는 천도교 교구실에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김영원은 교도들을 동원하여 운암면 일대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게시하도록 하였다. 3월 12일 임실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대규모 인원이 동참할 수 있었던 것도 김영원의 사전 노력 덕분이었다. 만세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선봉에 나선 혐의로 3월 27일 일경에게 체포된 김영원은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19년 8월 26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김영원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영원 판결문」, 1919년 4월 7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영원 판결문」, 1919년 5월 29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90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02∼503쪽.
전북지역독립운동추념탑건립추진위원회, 『전북지역독립운동사』, 신아출판사, 1994, 292∼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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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주소 전북 임실군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김영원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손자 김정갑(92)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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