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여성동우회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낙원빈대떡, 거북이상회 등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4년 5월부터 1927년 5월 근우회가 창립될 무렵까지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여성운동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의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여성운동 |
|---|---|
| 관련 조직 | 근우회(槿友會) |
| 관련 인물 | 박원희(朴元熙)/정칠성(丁七星)/허정숙(許貞淑)/주세죽(朱世竹)/우봉운(禹鳳雲) |
| 관련 내용 |
조선여성동우회는 1924년 5월 박원희·주세죽·허정숙·정종명·우봉운·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신사회의 건설과 여성해방운동에 나설 여성 일꾼의 양성과 훈련을 목적으로 창립한 여성 사회운동 단체이다. 조선여성동우회에는 서울청년회의 영수(領袖) 김사국의 처 박원희와 화요회계 박헌영의 처 주세죽(周世竹), 임원근의 처 허정숙(許貞淑) 등이 포진하여 외형상 당시 사회주의 운동 분파를 망라하였는데, 화요회계가 조선공산당의 창립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점차 서울청년회계 박원희파의 세력이 밀려나고 주세죽·허정숙 등 화요회계가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조선여성동우회는 창립 이래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로서 여성 사회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1927년 5월 조선YWCA 계열과 함께 여성운동의 협동전선으로 근우회(槿友會)를 결성하여 그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조선여성동우회는 창립 직후 관철동, 와룡동, 안국동, 관훈동 등지를 전전하다가 1925년 4월 10일 낙원동 173번지 화요회 회관 자리를 물려받아 자리를 잡고 근우회의 결성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근우회가 결성된 뒤인 1927년 6월 원동 121번지를 거쳐 견지동 88번지 조선노농총동맹 자리를 물려받아 둥지를 텄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5년 4월 13일, 「女性同友會移轉」. 『동아일보』, 1927년 5월 6일, 「사무소 이뎐」. 『중외일보』, 1927년 6월 15일, 「中央女子靑年 移轉, 견지동으로」.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 청계연구소, 1986, 153~1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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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낙원동 173 |
|---|---|
| 주소 | 서울 종로구 낙원동 17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5년 4월 13일자에 조선여성동우회가 관훈동 7번지에서 낙원동 173번지 전 화요회 자리로 회관을 이전한 기사가 나오고, 1927년 5월 6일자에 다시 원동 121번지로 사무소를 이전한 기사가 나온다. |














조선여성동우회 회관 터
조선여성동우회 발기회 기사(『동아일보』, 1924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