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학생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서울식품 등이 입주한 2층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의 회관이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6 육십만세운동 |
|---|---|
| 관련 조직 | 화요회/신간회/조선학생회 |
| 관련 인물 | 박하균(朴河鈞/박의양(朴儀陽)/권태성(權泰晟)/이선호(李先鎬)/유면희(柳冕熙)/박두종(朴斗鍾) |
| 관련 내용 |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사상단체인 화요회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주도하여 1925년 11월 결성한 사회주의 계열의 학생운동단체이다. 창립 후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① 사회과학의 보급, ② 학생의 사상통일, ③ 상호단결, ④ 인간교육 본위의 실효, ⑤ 조선학생 당면문제의 해결’을 강령으로 내걸고, 학술강연회, 농촌강좌, 학생도서관 설립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6·10만세운동 과정에서 이른바 ‘사직동계’로 불린 학생운동 조직의 주축을 이루어 1926년 6월 10일 단성사 앞 파조교 독립만세시위 등을 이끌었다. 1927년 2월 민족협동전선 신간회가 창립되어 20세 이하의 학생들로 별도의 학생부를 설치하자, 조선학생회와 함께 신간회 학생부에 참여하여 1932년까지 활동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학생 비밀결사와 동맹휴학 등을 배후에서 지도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자 1933년 조직을 해산하고 조선학생회에 합류하였다. |
| 참고 문헌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회에 관한 건」, 1927년 10월 19일,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3)』,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4, 1970, 257쪽. 일기자, 「재경학생단체의 내면」, 『개벽』 72, 1926년 8월, 50쪽. 김호일, 『한국근대학생운동사』, 선인, 2005, 146~1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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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견지동 98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견지동 98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40-1 |
| 위치 고증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4권과 『개벽』 72호의 「재경 학생단체의 내면」이라는 기사,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집행위원회에 관한 건」(1927.10.19)이라는 문건에 당시 회관 주소지와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회관 터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강연회( 『동아일보』, 1925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