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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노농총동맹 회관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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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1층 건물에 음식점 ‘백학’이 입주해 있다.
정의 1924년 4월에 창립한 조선노농총동맹이 1927년 9월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립될 때까지 회관으로 사용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전조선노동대회
관련 조직 조선노동연맹회/조선공산당/조선노동총동맹/조선농민총동맹 
관련 인물
관련 내용 조선노농총동맹은 1924년 4월 조선노동연맹회, 남선노농동맹, 전조선노농대회를 비롯한 전국 167개 노동단체 대표 204명이 모여 ‘노농계급을 해방하여 완전한 신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창립한 노농운동의 전국적 단일단체였다. 창립 당시 선출된 중앙집행위원은 화요회계와 북성회계가 서울청년회계를 압도했는데, 사무소 또한 화요회·북풍회계 조선노동연맹회의 사무소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조선노농총동맹은 당시 노농운동 단체를 거의 포괄하여 회원수가 5만여 명에 이르렀지만, 일제의 집회 금지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또한 내부적으로 화요회·북풍회계와 서울청년회계 사이의 대립이 이어져 통일적인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이에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지도할 전국적 조직을 따로 조직하는 문제를 놓고 서면대회 형식으로 각 단체에 찬반을 물어 1926년 2월 18일 분립을 결정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대회를 열지 못했다. 결국 1926년「정우회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11월 18일 창립 이래 처음으로 집행위원회를 열어 조선노농총동맹의 분립규약을 통과시킨 뒤, 우여곡절 끝에 몇 차례의 서면투표를 통해 1927년 9월 6일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립되었다.
참고 문헌 「(1925년 경기도)主要團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시대일보』, 1924년 4월 23일, 「노농총맹 임시사무소, 견지동 88번지」.
『조선일보』, 1924년 4월 23일, 「노농총동맹 임시사무소를 견지동 88번지에」.
『동아일보』, 1927년 10월 29일, 「勞農 兩總 移轉」.
尖口生, 「까마구의 雌雄」, 『개벽』34, 1923.4,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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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견지동 88
주소 서울 종로구 견지동 88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38-13
위치 고증 『동아일보』1927년 10월 29일자에 창립 당시부터 경성부 견지동 88번지에 사무소를 두고 있던 조선노농총동맹이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립되면서 사무가 늘어나 1927년 10월 25일 서대문정 2정목 7번지 구 청년총동맹 자리로 옮겼다는 기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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